[기고]혼자서는 넓어질 수 없는 세계

최미나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커뮤니티팀장

최미나 gn@gwangnam.co.kr
2026년 05월 27일(수) 18:12
최미나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커뮤니티팀장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라는 알을 품고 태어난다. 청소년기는 그 단단한 껍질에 처음으로 금이 가는 시기다. 이전 세대가 학교라는 광장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그 알을 깨뜨렸다면, 지금의 청소년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관계의 밀도를 낮췄고, 타인은 함께하는 동료보다 경계해야 할 접촉자로 먼저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마트폰은 무한한 정보의 세계를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알고리즘이 정교하게 짜놓은 자기 취향의 방 안에 우리를 더 오래 머물게 했다. 더 많이 연결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쉽게 고립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의 청소년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세계를 넓혀가야 할까.

그 실마리는 덴마크 교육운동가 그룬투비(N.F.S. Grundtvig)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삶을 위한 학습과 스스로 돼가는 일은 방 안에 갇힌 고독한 명상이나 독서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봤다. 함께 노래하고, 밥을 먹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몸으로 부딪히며 갈등을 풀어가는 역동적인 사회적 교류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이 벼려진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그룬투비의 사상에서 출발한 덴마크의 비형식 시민학교, ‘폴케호이스콜레’에 잘 담겨 있다. 폴케호이스콜레는 대학이나 직업의 세계로 곧장 들어가기 전, 자신의 삶을 충분히 탐색해보는 갭이어(Gap Year)형 배움의 장이다. 덴마크 청소년들에게는 17.5세가 넘으면 “이곳에서 공부해볼까” 하고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호수 도시 실케보르에도 그런 학교가 있다. 바로 실케보르 호이스콜레다. 이들은 매년 3월이면 다른 나라로 배움여행(Study Trip)을 떠난다. 2024년부터 올해까지, 그들이 목적지로 택한 곳은 우리 광주다. 실케보르에서 코펜하겐까지 4시간, 인천까지 비행기로 14시간, 다시 광주까지 4시간. 도합 22시간의 물리적 거리를 넘어 이들은 청소년삶디자인센터(이하 삶디센터)에 닿았다.

그들이 광주에 온 이유는 단순한 도시 탐방이 아니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배우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광주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함께 광주를 걷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삶은 조금씩 열렸다. 언어는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더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 만남은 각자의 안쪽에도 변화를 남겼다. 광주 청소년들은 “소통을 잘하고 싶다.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말하며 새로운 자극 속에서 자기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덴마크 청소년들은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그들은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그 시절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 아픔과 용기 위에서 자라났는지를 몸으로 배운 셈이다.

이런 교류는 단순한 방문이나 체험에 머물지 않는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세계가 만나면서 내가 가진 경험의 경계가 넓어지는 일이다. 삶디센터를 통해 실케보르 호이스콜레에 파견돼 한 학기를 보낸 장학생 이한결씨(24)의 말은 그 의미를 잘 보여준다.

“덴마크에서 지낼 때, 그들은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매우 자연스럽게 여겼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도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필요한 것을 말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더 깊은 신뢰가 자란다는 걸 느꼈어요.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나를 알아갈 수 있었던 것도요.”

결국 나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언어 기술이 아니다. 소통하려는 태도, 만나려는 마음, 다름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지 않는 용기다. 소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자신이 속한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듯, 우리 역시 타인의 세계에 닿을 때 비로소 더 넓은 세계를 만난다.

지금의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존재와 존재로 만나고, 서로 다른 경험을 주고받으며, 시야를 넓혀갈 수 있는 여러 ‘만남의 장’ 말이다. 그 안에서 청소년은 고립된 자기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를 응원하고 지탱하는 사회적 교류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다시 그려나갈 수 있다.

결국 사람은 혼자서만 자라지 않는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고, 그 만남이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낼 때, 청소년은 비로소 자기 알을 깨고 나온다. 그리고 그 틈으로 더 넓고 더 다정한 세계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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