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잘 보이는 곳에 둬야지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김요수 gn@gwangnam.co.kr
2026년 06월 03일(수) 18:55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품격 있는 사람들의 책꽂이에는 문짝이 있다. 아마 먼지가 쌓일까봐 문짝을 달아놓기도 했겠다. 설마 겸연쩍고 부끄러운 책이 있어서 문짝을 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한때 문짝 있는 책꽂이가 있었다. 품격 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랬나? 문짝이 있으니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고, 가지고 있는 책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사람은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겠지만! 문짝을 뗐다. 나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책은 나누기도 하고, 너덜거린 추억의 책은 버리기도 했다.

책과 소통을 막은 문짝! 문짝만 뗐는데도 글이 더 가까워졌다. 아파트 평수가 조금 넓어져서 두세 발짝 더 걸을 수도 있다. 더 넓은 집으로 갈 형편이 안 되는데 두세 발짝 때문에 흐뭇해졌다. 덤으로, 글은 읽어서 머릿속에 쌓아야 한다는 걸 문짝을 떼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한때 예쁜 그릇을 자주 샀다. 그릇이 예쁘면 음식이 더 맛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우아하지 않은 삶이라 먹을 때라도 우아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문짝 달린 싱크대 찬장에 갇힌 그릇들은 막상 쓰려고 하면 그 예쁨을 찾기 어려웠다.

음식은 끓고 있는데 그릇을 못 찾아 불을 꺼야 할 때도 있었다. 음식의 맛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삶의 기회처럼! 급히 찾던 우아한 그릇이 깨지기도 했다. 쓰던 그릇을 자주 쓰니 우아함은 문짝 뒤에 갇히고 말았다. 문짝을 떼니 비로소 예쁨이 보였다.

더는 우아할 틈이 없어서 우아한 그릇을 나누기도 하고, 더는 우아하지 않아도 되어서 금이 간 그릇은 버렸다. 딱 필요한 그릇만 남았다. 넓어진 공간에는 추억들을 쌓았다. 덤으로, 음식은 우아를 떠는 것이 아니라 먹어서 건강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걸 알았다.

머리가 나쁘니까 읽으면서 잊지 않으려고 적는다. 적으면 글의 흐름이 잡힌다. 내 마음은 못 잡는데 글이라도 잡아서 다행이다. 행복한 만남도 적는다. 적어보면 만남의 주제가 뚜렷해지고, 상대가 어떤 일의 고수인 줄을 안다.

메모는 독서를 뿌듯하게 하고, 만남을 알차게 만든다. 그런데 적어 놓은 것을 어디에 뒀는지 모를 때 많다. 머리가 나쁜 것이 틀림없다. 요즘은 그날 적은 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분류해서 옮겨 적는다. 다음에 찾기가 쉽다. 어디에 옮겨 적었는지 모를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아무리 정보가 많더라도 나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따로 있다.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하니, 내 배는 툭 튀어나와 통통하지만 컴퓨터는 홀쭉해졌다. 어지럽던 머리도 가벼워졌다. 쌓아서 짐만 되었던 정보를 비우니, 그 틈새에 즐거움과 희망이 채워진다.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있다.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고, 불끈거리는 새 힘도 얻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 곁에 있으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웃는 사람 곁에서는 웃게 되고, 감동 잘하는 사람 곁에서는 감동을 자주 한다.

만나고 돌아섰는데도 좋은 기분이 오래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밝음에 나도 밝아져서 주변까지 밝아진다. 그의 친절이 떠올라 웃음 지으며 너그러움을 얻는다. 그의 침묵에서 존중을 배워 나도 말을 줄인다. 그의 감탄에 기꺼이 보답하려고 오늘을 가꾸며 애쓴다.

좋은 사람에게 물드니 내 삶이 좋아진다. 행복한 사람에게서 얻은 행복으로 순간순간 행복해진다. 아무리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더라도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잊힌다. 좋은 사람은 자주 만나고, 행복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겠다. 나랑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나의 거울이니까.

누가 좋은 사람일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 나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다. 누가 나에게 행복을 줄까? 나를 슬기롭게 가꿔주고,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사람이다.

잘 보이는 곳에 둬야겠다. 읽어야 할 책은 눈에 띄게 두고, 쓸 그릇은 그 제자리에 놔둬야겠다. 메모는 주머니에 둬서 자주 보다가 정리를 해야겠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만남은 언제든 반갑게, 행복한 사람은 일부러라도 만나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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