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희경루에 흐르던 풍류, 창무극으로 되살린다

시립창극단 특별기획공연 ‘희경루방희도’ 26일 광주예당 소극장
남도소리·무용 재해석 …'전석 매진' 속 지역 대표 콘텐츠 기대

글·사진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06월 12일(금) 16:14
시립창극단 특별기획공연 ‘희경루방회도’ 출연진들.
광주시립창극단은 26일 오후 7시30분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국악의 날 기념 특별기획공연 ‘희경루방회도’를 선보인다. 사진은 시립창극단 단원들이 최근 광주예술의전당 대연습실에서 ‘희경루방회도’ 중 한량무를 추는 선비들의 호연지기를 공연하는 모습.
조선시대 광주목의 대표 누정인 희경루. 이곳은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누각이 아니었다. 과거에 급제한 문사들이 다시 모여 시를 짓고 음악을 나누며 풍류를 즐기던 문화예술 교류의 공간이었다. 광주가 오래전부터 예향으로 불려온 배경에도 희경루와 같은 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500여 년 전 희경루에 모여 학문과 우정, 예술을 나눴던 선비들의 이야기가 창무극으로 되살아난다.

광주시립창극단은 오는 26일 오후 7시30분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국악의 날 기념 특별기획공연 ‘희경루방회도’를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1567년 광주 희경루에서 열린 계회 장면을 담은 보물 ‘희경루방회도’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조선 명종 22년 1546년 증광시의 동기생들이 광주 인근의 누정(樓亭)인 희경루에서 20년만인 1567년에 다시 만난 것을 기념해 그 감회를 간직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광주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유산으로 꼽힌다.

당시 희경루는 문사들이 시와 음악을 나누고 교유하던 공간이었다. 과거시험에 급제한 인물들이 한양이 아닌 광주에서 다시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된다.

광주시립창극단은 이 그림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연예술로 확장했다. 박물관 유리벽 너머 사백여 년 동안 멈춰 있던 한순간을 무대 위로 불러내 남도소리와 춤, 연희를 통해 새롭게 해석한다.

공연은 광주목사 오장환이 중건된 희경루에서 옛 친구들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희경루에 올라 함께 미래를 꿈꾸던 청년들은 세월이 흐른 뒤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20년 전 봄날의 희경루, 봄날의 정, 금의환향, 화재, 눈물 어린 재회, 희경루 등 6장에 걸쳐 무대를 선사한다. 사랑과 이별, 성공과 좌절, 우정과 희생을 겪은 이들은 다시 희경루에서 재회하며 잊고 있던 인연과 삶의 의미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특히 장원급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서룡과 설향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네 선비들의 선택은 작품의 주요 서사로 전개된다.

각 인물은 무관의 기개, 선비 정신, 청춘의 사랑과 갈등, 우정과 의리 등을 상징하며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품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오늘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담아낼 예정이다.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창극과 무용을 결합한 ‘창무극’ 형식이라는 점이다. 소리와 연기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 창극에 춤을 적극적으로 결합해 음악과 움직임이 함께 서사를 이끌어간다. 네 명의 선비가 한량무를 추며 소리를 이어가는 장면은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기대를 모은다.

전통 국악 선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편곡과 화성을 가미해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 역시 주목된다. 여기에 채향순 안무가의 섬세한 움직임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군무가 더해져 조선시대 희경루의 풍류와 정취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광주시립창극단원들이 특별기획공연 ‘희경루방회도’에서 희경루가 불에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공연은 회화와 공연예술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지된 그림 속 인물과 공간을 살아 움직이는 무대로 확장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새로운 감상 방식을 제시한다. 누각의 이름처럼 함께 기뻐한다는 의미를 지닌 ‘희경(喜慶)’의 순간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인연의 소중함과 위로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공연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지역 역사문화 자산을 소재로 한 창작 국악극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며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공연은 광주 초연 이후 전국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 오는 9월 17~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세계음악극축제(WTIF)에 참가하는데 이어 25일에는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에서 교류공연을 올린다.

창극단은 이번 작품을 일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광주를 대표하는 공연 콘텐츠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광주문화재단과 내년께 광주 남구 천변좌로 희경루 일대에서 야외공연을 선보이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김용호 예술감독은 “지역을 소재로 한 공연을 기획하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가 ‘희경루방회도’를 발견하고 작품화를 구상하게 됐다”며 “400여 년의 시간을 지나 오래된 그림 속 인물들을 음악과 무용으로 되살린 무대”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광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공연예술로 재탄생시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전국 무대에서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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