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칼라스의 재판과 허수아비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박병훈 gn@gwangnam.co.kr
2026년 06월 17일(수) 18:14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중세 말엽, 서구에서 나병은 자취를 감췄다. 성문 밖이나 변두리 어디에서도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이런 지역들은 사람의 그림자가 비추지 않는 볼모지로 남아 있었다.

이 때 유럽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듯 300~400년 동안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무엇인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더럽혀진 마음을 정화시킬 희생양이 필요했다. 중세 중엽에는 나환자 수용소가 1만9000개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고대하던 다른 질병의 등장으로 나환자 수용소는 중세 말엽에 이르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나환자 수용소는 그 시설의 운영을 위한 막대한 기부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관리하며 전용해왔다. 1589년 한 판사의 보고에 의하면 독일 슈튜트가르트의 나환자 수용소에는 이미 50년 전부터 환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 있던 나환자수용소는 곧 폐병한자와 정신질환자로 채워졌다.

나병의 소멸은 결코 의학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나병은 사라졌지만 저주받은 장소들과 의식들은 지속됐다. 나병에 대한 의식은 나병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동한 것이 아니라 나병과의 격리, 나병을 저주 속에 묶어두기 위한 의식이었다. 나환자 수용소에서 환자들이 자취를 감춰 가는 동안 나병보다 더 오래 기억된 일은 나환자의 모습에 부여된 이미지였다. 수용소에 격리된 나환자들은 집단에 소속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축출되지도 않은 존재의 기괴한 이미지 그 자체였다. 우리 사회에서 특정지역이나 국가의 무관심과 안전의식의 부재 속에 희생된 희생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와 다르지 않다.

시간이 지나자 나환자나 나병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들은 대상만 달리한 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격리 방식이 몇백년이 지나도 이상하리만큼 반복 재생됐다. 부랑인, 범죄자, 광인들이 나환자가 맡았던 역할을 대신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인들을 주제로 한 많은 창작물들이 탄생한다. 지금도 광인들의 지식과 지혜가 난무하고 있다. 이들은 평온하고 조용한 정의의 파수꾼이 아니라 미쳐서 날뛰는 봉두난발의 무사들이다.

미셀 푸코에 따르면 광기는 인간의 연약함, 꿈과 환상에 연결돼 있다. 인간이 자기자신과 유지하고 있는 미묘한 관계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광기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있다.

1761년 10월 13일 오후 7시 프랑스 남부 도시인 툴르즈에서 장 칼라스와 그의 가족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칼라스와 그의 부인 안로즈, 장남 마르크앙투안, 차남 피에르, 하녀 잔이 둘러 앉았다. 칼라스 부부는 두명의 아들 외에 셋째 아들 루이, 막내 아들 도나 그리고 두 명의 딸인 나네트와 안을 두었다.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루이는 개신교를 믿는 가족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막내 도나는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두딸은 여행 중이었다. 저녁을 먹으려는 순간 큰 아들 친구인 라베스가 찾아온다. 저녁을 먹은 후 라베스를 배웅하러 칼라스와 차남 피에르가 아래 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큰아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큰아들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치열한 음모론이 전개된다. 주장이 모여 추론이 되고 추론이 반복되면서 진실로 변하고 있었다.

결론은 큰아들의 개종을 싫어한 칼라스가 주도해 큰 아들을 살해한 뒤 타살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칼라스는 여론의 광기에 휘말리게 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행정관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가족들을 체포·구금해 버렸다. 큰아들은 순교자로 둔갑했고, 다섯명은 사탄이 돼버렸다. 검사는 칼라스, 그의 부인, 피에르에게는 교수형과 화형, 라베스에게는 종신노동형, 하녀 잔에게는 5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구형대로 선고가 이뤄져 집행됐다. 이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당대의 지성인이었던 볼테르였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칼라스 재심을 청원해 무죄를 이끌어낸다.

지금 우리 사회는 허수아비 지식인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우리의 확신은 광기인가?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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