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320만의 따뜻한 연대 김관회 ㈜아페 대표·조선대학교 대학원 사회적경제학과 원우회장
김관회 gn@gwangnam.co.kr |
| 2026년 07월 15일(수) 11:36 |
![]() |
| 김관회 ㈜아페 대표·조선대학교 대학원 사회적경제학과 원우회장 |
나는 광주에서 5년째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다. 회사 이름도 고대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apeiron)’이라는 개념에서 따왔다. 만물은 무한하다. 다시 말해 한계가 없다는 뜻이다. 장애가 한 사람의 잠재력을 가두지 못한다고 믿었기에 그 이름을 간판에 걸었다. 창업 첫날부터 목표는 단 하나, 정년 없는 장애인 회사였다. 직원을 식구로 여기고, 한 번 맞이한 식구는 내 손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우리 회사 디자인 실장은 사고로 척수가 마비된 한 가정의 가장이다. 3년 전 ‘중증장애인 재택근무 가능’이라는 채용 공고의 한 줄을 보고 연락해 온 것이 인연이 돼, 벌써 3년째 재택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 장애인 한 분도 새로 합류했고, 지난 3월에는 광주청년 일경험드림사업을 통해 비장애인 청년 한 명이 다섯 달 일정으로 일을 배우며 함께하고 있다. 이들과 일하며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일자리는 생계 수단만이 아니다. 세상과 나를 잇는 통로이고,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매일의 증명이다.
문제는 그 통로 앞에조차 서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매일 정시 출근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돌봄 때문에 경력이 끊긴 여성, 첫 일자리에서 밀려난 청년. 이들에게 잠재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일이 그들의 조건에 맞게 편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루 두세 시간이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환자나 장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험. 그 작은 노동의 가치가 한 사람을 다시 사회와 연결한다.
기술이 그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물리적 제약과 시간의 한계를 기술로 우회하게 해 준다. 하나의 일을 잘게 나눠 저마다의 가능 범위에 맞게 다시 이어 붙이면, 그동안 고용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사람도 노동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 회사가 지금 준비하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 바로 이것이다. 짧고 작은 일감이라도 더 많은 중증장애인이 일의 가치를 느끼고, 장애인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잘게 나뉜 일에 저마다의 속도로 참여하는 이 방식이 정식 일자리로 사회에 통용되고 인정받는다면, 그 쓸모는 장애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AI가 기존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가는 시대에,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새로운 노동의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포용적 일자리의 확장은 국제사회가 약속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핵심 슬로건인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Leave no one behind)’ 사회를 우리 지역에 구현하는 가장 확실한 실천이다. 유엔(UN)이 정한 SDGs의 8번 목표는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와 경제성장’을, 10번과 11번 목표는 각각 ‘불평등 감소’와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흔히 지속가능성을 기후위기 대응이나 생태계 보호로만 좁혀 생각하기 쉽지만,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적 연대와 일자리 혁신 역시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필수 조건이다. 경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규모의 확장을 넘어, 다양한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존엄을 지키며 기여할 수 있는 포용적 노동 생태계가 굳건히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통합특별시’가 완성될 수 있다.
통합특별시는 거대한 도시다. 새 청사와 산하기관이 들어서고, 수많은 사업과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그 일자리에 ‘존엄’이라는 기준 하나를 함께 세우자고 제안한다. 청년이든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경력단절인이든, 누구의 가능성도 한계로 규정하지 않는 도시. 사회적경제와 장애인기업은 그 실험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미 작은 회사들이 현장에서 그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이름에는 ‘한계 없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320만의 새 도시가 첫발을 내딛는 지금, 나는 이 도시 역시 누구의 가능성에도 선을 긋지 않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좋은 일자리는 사람을 먹여 살린다. 그러나 존엄한 일자리는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이윤보다 사람을 먼저 세우는 사회연대경제가 통합특별시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런 일자리가 부르는 것은 직원 몇 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다.
김관회 gn@gwangnam.co.kr
김관회 gn@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