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발위] 배리어프리 완성은 ‘일상’…복지 아닌 기본권으로

문화예술계에 부는 무장애(배리어프리) 바람…누구나 즐길 권리 아직 멀었다 <1>프롤로그
전시·공연 등 확산…점자·음성 해설 도입
무장애 전용 상설 공간·체계 뒷받침 부족
민주·인권·평화 도시 ‘접근성 보장' 모색 필요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송하종 기자 hajong2@@gwangnam.co.kr
2026년 07월 15일(수) 17:09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진 ACC 정원 투어 진행 모습. 사진 제공=ACC
지난해 이강하미술관이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사업으로 선보인 전시 ‘모두의 미술, 소리와 미술관’ 전경.
영화관을 찾아 객석에서 영화를 보고, 전시장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문화생활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많은 준비와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문화예술 공간은 여전히 높은 문턱으로 남아 있다. 물리적 이동 동선은 물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식에서도 접근성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으로 지역 문화정책의 외연이 넓어지는 현재, 문화예술 접근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새 도시의 품격과 직결된다. 무장애 예술은 일부 시설의 선택적 서비스가 아니라 통합 도시가 갖춰야 할 기본 인프라다.

최근 몇 년 사이 문화예술계에는 무장애, 이른바 배리어프리(Barrier-free) 바람이 불고 있다. 공연장과 전시장에는 점자 안내서나 음성해설이 도입되고, 영화 상영 때는 자막과 화면해설이 더해지고 있다. 장애인 관객을 고려한 프로그램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분명한 변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비롯한 지역 주요 문화시설에서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강하미술관이 선보인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사업으로 선보인 전시 ‘모두의 미술, 소리와 미술관’은 촉각·청각·시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관람을 지향해 주목받아 전시기간을 당초보다 한달여 간 연장하기도 했다. 올해는 오월 특별전 ‘새로운 창작 미래의 유산’과 연계된 무장애 접근성 프로그램 ‘모두의 창작, 모두의 워크숍’을 오는 8월 2일까지 운영한다.

ACC는 지난 2022년부터 접근성 강화 콘텐츠를 선보이며 공공문화시설을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오고 있다. ACC 인문강좌, 무장애 공연 등에 수어통역·음성해설·촉지도 등 무장애 서비스를 운영해왔다. 지난해에는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감각투어로 향기투어 및 정원투어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배리어프리를 전시 장르로 내세운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도 눈길을 끌었다. 전시는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나와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무장애와 상호작용 예술 등을 탐구해온 작가 5팀과 ACC 창제작 스튜디오가 함께 제작한 작품이 출품된 가운데, 설치작품 ‘코 없는 코끼리 no.2’는 코가 없는 코끼리 형상을 통해 이주 서사 속 차별과 혐오, 결핍 문제를 탐구해 전시 주제를 관통했다.

ACC 접근성 강화 주제전 ‘우리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가 오는 9월 5일까지 중국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가운데 관람객들이 전시 작품의 해설을 듣고 있다.
‘내 심장의 날개짓’이라는 주제로 지난해 광주문화재단이 선보인 예술날개 페스티벌 공연 참여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소수에게 제공되는 특별 서비스’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공공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특정 행사나 기획전, 일부 공연에 한해 제공되는 지원이 상설 인프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현재 광주에는 서울의 모두예술극장·모두미술공간처럼 배리어프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한 전용 무장애 문화예술공간이 사실상 부재하다.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위한 체계 또한 마찬가지다. 광주문화재단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장애예술의 사회적 가피를 확산하고 그 성과를 시민과 공유하는 광주형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 ‘예술날개 페스티벌’을 선보여왔다. 지역 내 복지관 등에서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모를 통해 선정해 성과를 나눈다. 이와 함께 지난 2022년 개소를 알린 장애예술인창작센터 보둠은 지역 내 장애예술인의 활동 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해왔다. 안정적인 지원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아 창작 거점이 바뀌고 발표 기회도 꾸준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예술인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야 배리어프리는 관람 접근성을 넘어 예술 생태계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행사를 하느냐’가 아니라 ‘구조가 있느냐’로 좁혀진다. 일회성 배리어프리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장애인 관객이 문화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접근성은 다시 불안정해진다. 특정 예산이나 기획 의지에 따라 제공 여부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권리라기보다 혜택에 가깝다. 민주·인권·평화 도시를 표방해 온 광주라면 문화예술공간에서의 접근권 보장 수준은 도시 정체성과도 연계된다.

특별한 날에만 문을 여는 문화예술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늘 열려 있는 문화예술을 지향해야 한다. 누구나 문화를 누릴 권리가 일상인 도시, 배리어프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광주 문화예술계의 무장애 바람이 일회성 흐름을 넘어 도시의 기본 구조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본격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송하종 기자 hajong2@@gwangnam.co.kr        정채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www.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gwangnam.co.kr/article.php?aid=1784102981542333000
프린트 시간 : 2026년 07월 15일 20:4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