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질식재해는 ‘사고’가 아니라 ‘안전조치 미이행’의 결과입니다 이정미 안전보건공단 광주광역본부 산업보건부 차장
이정미 gn@gwangnam.co.kr |
| 2026년 08월 04일(화) 1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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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미 안전보건공단 광주광역본부 산업보건부 차장 |
맨홀, 하수관로, 오·폐수처리시설, 정화조, 저장탱크, 반응기 등은 외형상 평범한 작업공간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의 방심으로도 작업자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공간이다.
질식재해의 가장 큰 특징은 ‘예고가 없다’는 것이다. 산소가 부족하거나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가 존재하는 공간에서는 작업자가 몇 초 만에 의식을 잃을 수 있으며, 이를 구하려던 동료까지 보호장비 없이 들어갔다가 함께 쓰러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발생 빈도는 높지 않지만 치명률은 산업재해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이러한 반복 사고를 막기 위해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여름철 질식재해 고위험 시기인 5월부터 9월까지 전국의 밀폐공간 작업장을 대상으로 집중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맨홀 작업에 대해서는 작업 시작 전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 측정, 환기 실시, 보호구 착용 등 필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맨홀 작업 안전조치 확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예방 중심의 정책은 공공부문이 먼저 안전관리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현장에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사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19일 전북과 인천에서는 맨홀 작업 중 작업자들이 동시에 질식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모두 구조되어 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사고 원인은 지금까지의 질식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밀폐공간 작업의 기본인 작업 전 가스농도 측정, 충분한 환기, 적정 보호구 착용 등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거나 관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집중점검을 실시하는 상황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큰 경각심을 주고 있다.
질식재해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원인이 명확하며, 예방방법 또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현장에서 생략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주와 발주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작업을 지시하는 순간부터 안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시작된다. 작업허가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며, 위험성평가를 실시했다고 해서 사고가 예방되는 것도 아니다.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실제로 측정했는지, 환기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송기마스크나 공기호흡기 등 적절한 보호구를 착용했는지, 감시인이 작업 전 과정을 확인하고 있는지까지 직접 확인할 때 비로소 안전조치가 완성된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하수도 유지관리, 맨홀 준설, 관로 조사와 같은 작업은 대부분 도급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작업업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가장 위험한 안전관리 방식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발주기관과 경영책임자에게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안전은 계약으로 위임할 수 있지만, 책임까지 위임할 수는 없다.
안전조치는 비용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투자이다. 가스측정기 하나, 송풍기 한 대, 보호구 한 벌, 작업 전 10분의 안전 확인이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한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기본조치를 생략한 대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상실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기업의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질식재해는 예방할 수 있는 재해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기본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올여름에도 수많은 작업자가 맨홀과 하수관로, 저장탱크 등 밀폐공간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는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사업주와 발주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설마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질식재해의 시작이다. “반드시 확인하고 작업한다”는 원칙만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질식재해 예방은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이며,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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