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AI 시대, 아이를 키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김명화 교육학박사

김명화 gn@gwangnam.co.kr
2026년 08월 05일(수) 17:30
김명화 교육학박사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 삶의 일상이 됐다.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부모보다 먼저 AI에게 질문하고, 숙제하다가 막히면 검색 대신 AI를 활용한다. 동화를 읽어 주고, 영어를 가르치며, 그림을 함께 그려 주는 일도 가능해졌다. 기술은 분명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과연 지식을 전달하는 일일까, 아니면 마음을 키우는 일일까.

부모는 아이에게 수많은 것을 가르친다. 숫자를 세는 법, 글자를 읽는 법, 예절과 생활 습관까지 알려 준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 실패를 견디는 법과 같은 정서적 경험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

개그우먼 김신영은 어릴 적 할머니와 대화를 개그 소재로 삼고 있다. 학교에서 산수를 빵점을 맞았다. 외할머니는 신영이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눈다. “옴마나 우리 똥강아지가 왜 그럴까? 우리 신영이가 똑똑한디 왜 그랄까? 신영아 너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 둘리 생각하나. 자 들어봐 철수가 빵을 두 개 줬어. 영희가 감자를 하나 줬어. 그러면 몇 개여” 신영이 왈 “두 개” 그때 할머니의 언어에 폭소가 터트려진다. “야 집만 잘 찾아와라.” 손녀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할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인간의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정서를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이 정서 조율이 가장 먼저 이뤄지는 공간이다. 아이가 넘어져 울 때 부모는 단순히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안아 주고 눈을 맞추며 울음을 달랜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과 목소리, 따뜻한 체온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키워 간다. AI도 아이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건넬 수 있다. 위로의 문장을 만들고 해결책을 제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떨리는 손을 잡아 주거나, 말없이 등을 토닥이며 함께 울어 주지는 못한다. 아이는 정답보다 부모의 눈빛과 표정, 따뜻한 손길 속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양육은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 부모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화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타인을 어떻게 배려하는지를 일상 속에서 배우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교과서나 AI가 가르쳐 줄 수 없는 삶의 교육이다. 인간다움은 설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경험하며 익혀지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나’가 아니라 ‘너’를 만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그 출발점이다. 부모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이 역시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에 대한 신뢰를 형성한다.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는 경험은 건강한 자존감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신뢰는 어떤 인공지능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부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기술이 지식을 대신 전달할수록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읽고, 실패를 함께 견디며, 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알려 주는 존재가 돼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정답을 알려 주는 부모가 아니라,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부모이며, 성공만을 칭찬하는 부모가 아니라 노력과 용기를 함께 인정해 주는 부모이다. 결국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은 가장 똑똑한 기술이 아니라 가장 따뜻한 관계이다.

AI 시대일수록 부모가 아이에게 남겨 줘야 할 가장 큰 유산은 지식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힘, 그리고 사랑받았다는 기억이다. 기술은 양육을 도울 수 있지만 부모를 대신할 수는 없다. 미래 사회에서 인간다움은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길러진 공감 능력으로 완성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결국 정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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