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군공항 부지, 호남 반도체 30년 미래 담는다

[호남 반도체 팹 핵심은 ‘인수전지(人水電地)’] <3> 부지
250만평 평탄한 지형·확장성 갖춘 최적 입지
국가산단 조성 ‘속도전’…올해 말 착공 목표

이승홍 기자 photo25@gwangnam.co.kr
2026년 08월 05일(수) 18:28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광주 군공항 부지
반도체 공장은 건물 한 동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산라인이 늘어나고 장비·소재 기업이 뒤따라 들어오며 연구시설과 물류 기반이 더해져 하나의 산업도시로 성장한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신규 생산기지를 결정할 때 전력과 용수 못지않게 중요한 게 ‘부지’다. 당장 필요한 공장 면적보다 앞으로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 협력기업과 연구시설을 함께 품을 수 있는지가 투자 판단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정부는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입지로 광주 군공항 이전 예정지를 선택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현재 생산시설 몇 개를 배치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어질 투자와 증설을 담아낼 산업 거점 최적지로 판단한 것이다.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광주 군공항 이전 예정지 일원 826만㎡(약 250만평)에 조성된다. 국내 반도체 산단과 비교해도 대규모 부지에 해당한다.

군 공항 부지에 메인 팹(Fab)의 을 비롯해 연구개발(R&D) 시설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지원시설 등이 들어설 수 있다. 단순 생산기지를 넘어 기업과 연구기관이 집적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 목표다.

반도체 생산시설은 일반 제조공장과 구조부터 다르다. 초미세 공정을 진행하는 클린룸을 비롯해 초순수 생산시설, 특수가스 공급설비, 폐수처리시설, 물류시설 등 다양한 기반시설이 하나의 생산 체계처럼 연결돼야 한다.

공장과 지원시설이 떨어져 있거나 부지가 여러 곳으로 나뉘면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기반시설을 중복 구축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단순히 넓은 땅보다 하나로 이어진 대규모 연속부지를 선호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평택은 대규모 부지를 먼저 확보한 뒤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성장했다.

대만 TSMC의 신주·타이난 과학단지도 마찬가지다. 생산시설이 들어선 이후 장비업체와 소재기업, 연구기관이 모이며 세계적인 반도체 생태계로 성장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같은 전략이다. 당장의 생산시설 확보에 그치지 않고 향후 추가 투자와 기업 집적까지 고려해 공간을 먼저 마련하는 방식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의 가장 큰 강점은 대규모 연속부지와 평탄한 지형이다.

공항은 항공기 이착륙을 위해 넓고 평평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부지 정비와 평탄화가 이뤄져 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토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은 미세한 진동과 환경 변화에도 생산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생산장비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지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정비된 부지를 활용하면 대규모 절토와 성토 작업을 줄일 수 있어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단축하고 기업 투자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은 미래 투자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 번 공장을 짓고 끝나는 산업이 아니다. 기술 변화와 시장 수요에 따라 새로운 생산라인을 추가하고 기존 시설을 고도화하는 투자가 지속된다.

처음부터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추가 부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진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TSMC 주요 생산기지가 초기부터 대규모 부지를 확보한 것도 이런 이유다.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은 현재 몇 개의 공장을 지을 수 있느냐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성장할 공간을 확보했느냐의 싸움이다.

광주 군공항 부지는 메인 팹뿐 아니라 후공정 시설과 연구개발센터, 소재·부품·장비 기업까지 품을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는 생산기업 하나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장비업체와 소재기업, 설계기업, 연구기관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야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군공항 이전 부지가 첨단산업 공간으로 전환된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그동안 광주 군공항은 소음과 개발 제한 등으로 지역 발전의 제약 요인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전 이후에는 826만㎡ 규모의 공간이 호남 미래산업을 담는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광주 도심과 가까운 입지도 강점이다. 인력 확보와 정주 여건 측면에서 유리하고 대학·연구기관과 연계한 산업 생태계 구축도 가능하다.

부지 선정에 이어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군공항 부지를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최종 지정했다. 앞으로 개발제한구역(GB) 해제를 비롯해 개발계획 수립, 실시설계, 기반시설 구축 등 여러 절차 등 갈길이 멀다.

전남광주특별시는 국토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통해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산업단지 개발계획 수립을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기본 구상과 타당성 검토가 진행된 만큼 불필요한 절차를 줄여 사업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목표는 이르면 2026년 말, 늦어도 2027년 초 착공이다.

예비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조사와 설계용역 발주 절차에 착수했다. 기존 100일 이상 걸리던 용역 업체 선정 기간을 58일로 줄여 9월 하순 설계 업체를 확정하고, 10월부터 산단 조성 밑그림을 그린다는 계획이다.

다만 국가산단 조성의 전제 조건인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는 풀어야 할 과제다.

군 공항 이전 예정지를 활용하는 사업인 만큼 이전 대상 지역인 무안군과의 협의가 사업 속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무안군은 군공항 이전에 따른 소음 피해와 지역 부담을 고려해 광주 민간공항의 무안국제공항 선 이전, 이전지원금 1조원 구체화, 무안국가산단 후보지 지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이라는 새로운 기회와 군공항 이전에 따른 지역 부담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 통합특별시가 풀어야 할 과제다.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 방안과 지역 발전 대책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사업 추진 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관계자는 “정부 부처와 기업, 유관기관이 긴밀히 협력하는 원팀 체계를 구축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착공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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