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 속 조리법으로 되살린 ‘미향 남도’의 뿌리

한국학호남진흥원, '전남종가음식서' 발간
호남 최초 한글 조리서 '음식보' 등 2종 수록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08월 21일(금) 17:47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홍영기)은 전남도의 지원을 받아 최근 전남 종가 음식서 복원 사업의 성과를 집대성해 ‘전남종가음식서’를 발간했다. 사진은 담양 홍주송씨 하심당가 ‘하심당가음식법’.
나주 풍산홍씨 석애문중의 ‘음식보’.
전남 종가에 대대로 전해온 고문서를 통해 남도 음식문화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는 서적이 발간됐다.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홍영기)은 전남도의 지원을 받아 최근 전남 종가 음식서 복원사업의 성과를 집대성해 ‘전남종가음식서’를 발간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서적에는 나주 풍산홍씨 석애문중의 ‘음식보’와 담양 홍주송씨 하심당가의 ‘하심당가음식법’을 한 권에 담았다. 18~19세기 전남 종가의 조리법과 음식, 생활문화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음식보’는 현재까지 호남에서 처음 발굴된 조선시대 한글 조리서로 평가된다. 18세기 나주 사대부가 여성들의 지식 전승을 보여주는 자료로, 39개 음식 방문 즉 조리법을 통해 당시 식생활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서적에는 나주 영산강 유역의 숭어 새끼인 ‘모장’을 활용한 자렴법, 파초를 넣은 동치미, 전남 방언이 반영된 모희편 등이 담겼다. 태화주·백병주·진향주 등 다른 한글 조리서에서 보기 어려운 음식명과 제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보’는 지난 2023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심당가음식법’은 19세기 후반 담양 지역에서 한글로 기록된 음식서로, ‘음식보’에 이어 호남에서 두 번째로 발굴된 한글 조리서 사례다. 현재 남아 있는 7장 13쪽에는 칠일주·소주삼해주·소곡주 등 술 7종과 약과·배추김치·동치미·준어찜·천엽만두·어만두 등 음식 7종이 실려 있다. ‘효주’와 ‘모쌀’, ‘동침지’, ‘너럭지’ 등 전라도 지역의 언어와 남방 쌀 문화권의 양조 특성이 담겨 19세기 담양 종가의 식생활과 여성 문자 생활을 살필 수 있는 희소한 자료다.

이번에 발간된 ‘전남종가음식서’는 두 음식서를 단순히 영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장 경위와 작성 배경, 역사적 가치를 밝힌 해제와 함께 고한글 원문 판독, 현대어역, 상세 주석을 수록한 게 특징이다. 문헌학·국어학·음식문화사 연구자와 음식·전통주 전문가가 참여했다. 기록 속 음식과 술을 실제로 재현했으며, 현대 독자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조리 과정과 재료를 레시피로 정리, 원자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원서 이미지도 함께 실렸다.

두 음식서는 시기와 지역은 다르지만, 종가 여성들이 살림과 제사, 손님맞이 과정에서 축적한 조리 지식을 한글로 기록하고 후대에 전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따라서 ‘전남종가음식서’는 남도 음식의 특정 메뉴를 소개하는 책을 넘어, 오늘날 ‘미향 남도’로 이어진 음식문화의 뿌리와 형성 과정을 실증적으로 추적하는 출발점이자 지역 생활사·여성사·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기초 자료라는 의미가 있다.

홍영기 원장은 “이 책은 오래된 조리법을 되살린 성과를 넘어, 남도 음식문화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가문과 지역 안에서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남 종가 여성들의 지혜와 생활 문화가 연구자뿐 아니라 시민의 식탁과 교육 현장에서도 새롭게 활용되도록 기록유산의 보존·연구·확산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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