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활동가 넘어 호남 대표 사림으로 재조명을"

[회재 박광옥 탄신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나영훈 목포대 교수, 고경명 등과 지역 기반 확대
박학래 군산대 교수, 의리 정신 현실 정치에 반영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2026년 08월 25일(화) 18:26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는 25일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 ‘회재 박광옥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김이강 서구청장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청
회재 박광옥 선생을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가로만 평가하기보다 16세기 호남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개혁 정치에 참여한 관료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이 나왔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는 25일 서빛마루문예회관에서 ‘착한도시 서구’의 정신적 뿌리로 평가받는 회재 박광옥(1526~1593) 선생의 탄신 5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나영훈 국립목포대 사학과 교수는 ‘관직 생활과 인적 네트워크’를 주제로 발표하며 박광옥 선생이 광주를 대표하는 관료로서 임진왜란 당시 호남 의병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나 교수는 “박광옥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고령에도 호남 의병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친족·향촌 활동을 통해 쌓은 인적 관계가 있었다”며 “아버지 박곤과 큰아버지 박붕이 문과에 급제하면서 음성박씨가 광주지역 명족으로 자리 잡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박광옥은 1546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뒤 곧바로 중앙 관직에 진출하기보다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지역사회 기반을 넓혔다.

나 교수는 “박광옥이 고경명·김언거 등과 시문을 주고받고 정자·향교·서당 등을 매개로 교유한 것은 개인적인 수양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학문과 교화를 매개로 호남 사림이 결속하고 지역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 박광옥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특히 박광옥을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가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생애와 역사적 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나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박광옥이 호남 의병 활동에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부터 형성된 사회적 기반과 인적 네트워크 덕분”이라며 “박광옥은 16세기 후반 호남 사족이 친족·향촌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중앙 관료사회를 연결해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박학래 국립군산대 철학과 교수도 ‘회재 박광옥의 의리 정신과 그 실천’을 주제로 박광옥을 16세기 호남 사림의 의리 정신을 계승한 인물로 분석했다.

박 교수는 “박광옥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학문적 성취를 이뤘고 의리 정신에 투철한 호남 선후배·동료 사림과 학문을 교류했다”며 “40대 중반 이후 관직에 나아가 성리학을 토대로 의리 정신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림의 개혁 정치에 동참해 향촌 교육과 교화의 활성화를 이뤘으며, 공론에 입각한 정치 실현에 누구보다 앞장섰다”며 “이러한 관직 생활은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 활동이라는 충의의 실천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박광옥을 사후 의병 활동에만 초점을 맞춰 추숭해온 기존 평가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박광옥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가로만 이해하기보다 의리 정신을 기반으로 한 호남 사림의 대표 인물이자 개혁을 주도한 사림 정치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관료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의 연구도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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