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은 조용히"…‘장윤기 사건’ 전 국수본부장 기소

[광주지검, 경찰 수사 지휘부 수사결과 발표]
검찰 "부실대응 비판 회피 목적 수사 축소·고의 분리"
박성주 전 본부장 "피해자 보호·보안 유지 정당 지휘"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2026년 09월 02일(수) 18:27
신태훈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청사 5층 중회의실에서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장윤기 사건’ 부실수사·증거인멸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당시 경찰 수사 최고 지휘부였던 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장(60·치안정감) 등 4명을 재판에 넘겼다.

광주지검은 2일 박 전 본부장과 국가수사본부 강력범죄수사과장 직무대행(전 강력범죄수사계장), 전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장, 현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성폭력범죄수사계장 등 4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경찰의 초동조치 부실과 그에 따른 비판을 피하기 위해 장윤기의 외국인 여성 성폭행·스토킹 사건과 여고생 살인 사건의 병합 수사를 막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박 전 본부장은 “부당한 논리구성”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향후 재판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장
- 검찰 “과오 은폐·비난 회피 목적”

△광주지검에 따르면 박 전 본부장 등 4명은 광산경찰 수사팀이 장윤기의 외국인 여성 강간·스토킹 사건과 여고생 살인 사건을 병합해 수사·송치하겠다고 수차례 건의했음에도 두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스토킹 사건에 대한 경찰의 초동조치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황에서 장윤기 사건의 연관성이 알려질 경우 경찰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커질 것을 박 전 본부장 등이 우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오전 0시10분께 귀가하던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하고, 이를 구조하려던 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

사건을 수사하던 광산경찰 수사팀은 장윤기가 범행 이틀 전인 5월 3일 평소 알고 지내던 외국인 여성 A씨의 주거지에 침입해 성폭행하고 스토킹한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두 사건이 시간적·장소적으로 가깝고 범행 수법에서도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살인 사건의 동기와 성범죄 목적 등을 규명하기 위해 두 사건을 함께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A씨가 장윤기를 피해 이동한 지역까지 수사관을 보내 5월 7일 피해 진술을 확보했다.

이어 5월 8일 광주경찰청을 통해 국가수사본부에 두 사건을 병합해 수사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국수본 지휘부는 두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광산경찰 수사팀이 이후에도 병합 수사와 병합 송치를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검찰은 박 전 본부장이 이 과정에서 “강간은 조용히 하자”, “일부러 숨기는 것은 아닌데 굳이 우리가 먼저 꺼낼 것은 아니지 않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분리수사를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같은 지시가 단순한 사건 배당이나 수사 보안 차원이 아니라 경찰 조직의 과오와 비난을 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살인 사건은 5월 14일 먼저 송치되고 스토킹·강간 사건은 5월 22일 별건으로 송치되면서 두 사건의 연관성이 당시 신상공개와 송치 과정에서 함께 부각될 기회가 사라졌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상급청의 수사지휘권은 수사의 적법성 보장과 실체적 진실 규명 등 정당한 목적을 위해 행사돼야 한다”며 “조직의 과오 은폐나 비난 회피 등 그와 무관한 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은 경찰 수사 최고 지휘부의 부당한 개입을 규명한 사례”라며 유사한 수사 개입을 차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박 전 본부장 등 4명에 대해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크지 않고 객관적인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시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 등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검찰은 관련자들의 행위와 국수본 지휘부와의 관계 등을 종합해 추가 처분할 방침이다.

- 박 전 본부장 “정상 지휘…부당 기소”

박 전 본부장은 검찰의 기소 결정 직후 입장문을 내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이날 “수사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하고 부족했던 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저를 비롯한 국가수사본부가 경찰 조직의 부실 대응을 은폐하고 여론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분리수사를 지시해 필요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는 식의 부당한 논리구성은 결코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박 전 본부장은 당시 수사에서 범행 동기와 목적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경찰서의 송치 수사기록에도 구속기간 안에 완벽히 입증하지 못한 범행 동기와 목적에 관한 수사사항들을 나열하면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지시 역시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본부장은 “왜곡·축소 또는 부당한 지시를 할 필요도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며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기능별로 철저히 수사할 것, 사건의 성격상 보안을 유지할 것 등 지극히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업무지시를 했을 뿐이었다”고 밝혔다.

검찰이 문제 삼은 “강간은 조용히 하자”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서도 피해자 보호와 사건 보안을 위한 업무상 지시였다고 해명했다.

박 전 본부장은 “광주지검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사안을 설명했음에도 무리하게 공소제기를 결정한 데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향후 진행될 재판 절차에서 거짓 없이 성실히 임하고 광주지검의 무리한 기소였다는 점을 당당히 밝혀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건 피해자인 이채원양과 유가족을 향해 “고개 숙여 진심 어린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이 사건으로 많은 국민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전 국가수사본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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