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아시아의 리얼리즘

-장웨이의 ‘어신을 찾아서’
문학평론가 정은경

정은경 gn@gwangnam.co.kr
2026년 09월 07일(월) 18:43
문학평론가 정은경
장웨이는 첫 장편 소설 ‘古船’(1986)으로 작가적 명성을 얻고, 700만자에 달하는 10부작 대하소설 ‘고원에 서다’(2010)로 중국최고의 문학상인 마오둔(茅盾)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한 부둣가 마을의 장구한 역사와 수난을 다룬 ‘고선’은 중국 비평가들이 뽑은 ‘100년 동안의 100편의 소설’에 선정되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올해 아시아문학상 후보 추천작인 ‘어신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2023)는 장웨이의 초·중·후반 창작을 대표하는 세 편의 작품을 묶은 책이다. 일력의 표기도 없고, 도시의 복잡한 도로와 신호, 규율, 관습, 관계도를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소설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산, 하늘, 냄새, 소리 그리고 그 속에 산수화처럼 그려진 작은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히 대륙적이라 할만한 이 지구적 스케일의 자연풍광 속에도 인간사는 있다. ‘어신’(魚神)이 되고자 하는 욕망, 다른 경쟁자에 대한 질투와 기만, 탐욕에 의한 전락, 원수의 집안으로 헤어진 사무친 사랑, 그 많은 파동에도 불구하고 자연처럼 다시 새롭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열망 등. 그러나 이 거대한 서사와 환상적 자연을 재현한 장웨이의 작품들은 산수화처럼 담백하고 서정적이다. 장웨이의 작품들은 분명한 시대적 격랑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들이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방식으로 역사적 현실들을 뛰어넘어 이를 ‘다른 세계’ 속에서 포용한다.

가령, ‘바닷가 호루라기’는 1958년에서 1960년 사이에 있었던 중국의 ‘대약진(大躍進)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2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아사했다는 기록에서 비롯된 수난을 그리고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 가족도 친척도 없이 홀로 사는 노인이 대약진운동에 희생된 도시 사람들 일부를 먹이고 돌보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획기적인 과학발명과 생산혁신을 이루고자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몰았던 대약진운동을 ‘굴껍질을 간장으로 만드는’‘큰 일’로 비유하고, 지옥 같은 도시는 ‘큰집 과 ‘벌집’, ‘자동차의 길’로 풍자한다. “온 마을이 하나의 기계처럼 돌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셈”, 자동차는 길을 따라가지만, “배들은 진정 자유로이 어디에나 갈 수 있다” 등의 문장은 맹목적인 이념과 비극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근대 문명의 비인간성을 성찰하게 한다. “낮과 밤, 아침과 저녁, 오전과 오후는 빛깔과 광도로 구분되었을 뿐만 아니라 향기로도 구분할 수 있었다. 누구든지 눈을 감고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는 재스민 향기가 났고 점심에는 동백꽃 향기가 났다. 밤이 되면 모든 꽃과 잎이 오므라”(‘바닷가 호루라기’) 드는 ‘순수한 녹색’의 세계, 그것은 과연 이 복잡한 기계문명과 환멸의 도시문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장웨이는 그렇다고 답한다.

산둥성 룽커우시에서 태어난 작가는 고교 진학 대신 고무공장에서 일했으며, 중등교육과정을 마친 뒤에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작품들은 이렇듯 그가 자라나면서 체험한 중국의 대자연과 노동현장을 담고 있는데, ‘향토문학’ ‘생태주의’라는 수사로 담아낼 수 없는 세련되고 섬세한 감수성, 인간과 삶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가령, 전통적 삶의 양식과 촌락 공동체와 관계의 비극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어신을 찾아서’는 한수, 수수라는 어신을 통해 낭만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자연은 문명 안에서 보면 낭만적이지만,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을 구분하는 ‘생수(生水)와 숙수(熟水)’ 등의 이야기는 실질적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신비한 낚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떠난 소년은 ‘한수, 수수’라는 서로 다른 방식의 전설적 고수를 만나 진정한 ‘어신’으로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흙에서 물고기를 찾아내는 한수,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수수라는 기술의 대립’을 원수가 된 두 집안, 체념해야하는 사랑, 끝내 서로의 오해 속에서 죽은 한수와 사무친 그리움 등의 인간사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결말에서 작가는 이들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진정한 어신은 기술이 아니라 ‘물의 뿌리’라는 자연임을 강조한다. 생산과 발전에 눈먼 ‘큰집’에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을 호루라기를 불어 바다로 끌어내는 ‘바닷가 호루라기’의 결말 또한 살아 약동하는 ‘생’ 이상의 중요한 것은 없으며 그것이 근본은 자연 속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집에서 기근과 폭력의 현실을 그리는 장웨이의 필체는 핍진하지만, 서구 근대적 양식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중국적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장웨이의 작품은 잔혹한 현실을 뛰어넘는 신비함과 서정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힘과 휴머니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한다.

자연과 촌락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장웨이의 소설들은 단순히 문명에 맞선 생태학적 상상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파란 많은 근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용하고 회복하는 대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장웨이의 소설은 우화적 양식과 닮아있으나 섣불리 낭만성과 교훈으로 흐르지 않는다.

핍진한 현실을 독창적인 감각으로 형상화하면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미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지점을 성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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