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변화하는 시대, 사람을 위한 규제의 담금질

이혁 광주지방보훈청 기획팀장

이혁 gn@gwangnam.co.kr
2026년 10월 11일(일) 18:52
이혁 광주지방보훈청 기획팀장
사람이 만든 제도는 때로 사람보다 오래 남는다. 처음에는 꼭 필요했던 기준도 시간이 흐르고 삶의 모습이 달라지면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필요한 지원을 가로막는 일도 생긴다. 그렇다면 지켜야 할 것은 제도 그 자체일까, 아니면 그 제도가 처음 만들어졌던 취지일까.

규제합리화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무조건 규제를 없애거나 기준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 다시 살펴 꼭 필요한 원칙은 지키고, 달라진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은 고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와 보답을 실현하는 보훈행정은 더욱 그래야 한다. 예우와 보답은 제도 안에 적힌 문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고, 병원을 이용하며,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올해 국가보훈부도 이러한 방향에서 여러 제도를 다시 살폈다.

기초생활보장 소득을 산정할 때 상이유공자 보상금 가운데 장애인연금 수준인 43만원을 공제하도록 개선하고, 간호수당을 받는 1~2급 국가보훈대상자에게 장애인 활동지원과의 선택권을 부여했다. 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보상이 다른 지원을 받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하나의 지원 때문에 또 다른 필요한 지원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의료와 복지 분야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보훈병원이 없는 지역에는 국립대병원이나 지방의료원을 활용한 ‘준보훈병원’을 도입하고, 독립유공자 선순위 유족의 위탁병원 이용 연령을 75세에서 65세로 낮췄다. 부서별로 각각 실시하던 생활수준조사 결과도 공유하도록 해 같은 조사를 반복하는 불편을 줄이고 지원 절차를 단축했다.

제대군인의 사회복귀 과정도 살폈다.

공공부문에 채용된 제대군인의 호봉과 임금을 산정할 때 의무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하도록 하고, 무료법률구조 지원도 전상·공상을 입고 전역한 의무복무 제대군인 등으로 확대했다. 국가를 위해 보낸 시간이 사회에 돌아온 뒤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제도의 기준을 현실에 맞게 바로잡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법령 몇 줄이나 절차 하나를 고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삶에서 보면 결코 작지 않다.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가까워지고, 같은 조사를 다시 받지 않아도 되며, 국가를 위해 복무한 시간이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은 제도의 변화가 곧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제도를 고친다는 것이 원칙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보훈의무고용 관련 과태료를 위반 횟수와 양태에 따라 달리 부과하도록 개선한 것처럼, 획일적인 기준은 현실에 맞게 바로잡되 필요한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규제가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라, 그 기준이 지금도 처음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좋은 행정은 새로운 제도를 많이 만드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제도가 사람의 삶과 멀어지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현실이 달라진 만큼 다시 고쳐 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제도는 한번 만들어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되고 담금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훈행정은 과거의 희생을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 행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제도가 실제 생활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규제합리화는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국민의 삶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예우가 제도 속 약속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삶에서 실제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사람이 제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는 것. 규제합리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행정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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