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썩느냐, 익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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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세평

<아침세평> 썩느냐, 익느냐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콘텐츠산업진흥 본부장 김요수

먹을 거리를 잔뜩 사서 요리를 하려는데 가스가 떨어져 불을 피울 수 없을 때의 허둥지둥과 어리둥절,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한참 뒤 장작불이라도 얻었을 때의 기쁨,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넘치는 물을 보고 외쳤다는 ‘유레카(찾았다)’에 견줄까. 그 다음부터는 서두르지만 않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불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고, 아마 요리의 발달에 가장 큰 공을 세웠지 싶다. 불을 쓰면서 음식을 두고(저장) 먹을 수 있게 되니 사냥이나 채취의 시기도 조절했을 테고, 병균의 침입을 막아 목숨이 더 길어지기도 했겠다.

요리에서 고기를 삶아 먹느냐, 구워 먹느냐에 따라 영양가가 다르고 숯불에 굽느냐, 가스 불에 굽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불이 발견되기 전에는 날로 먹었으리라. 바닷가에서는 굴을 비롯 조개류를 날로 먹었겠고, 들에서는 버섯이나 푸성귀를 바로 따 먹었겠다. 푸성귀는 채소의 우리말인데 보살펴 길러 먹는 ‘남새’와 저절로 자라는 ‘푸새’를 한꺼번에 부르는 말이다.

체코의 베스토니체에서 기원전 2500년으로 가늠하는 화덕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불을 얻은 뒤로는 그릇도 만들었겠고, 불 때문에 생긴 남은 시간은 인류 발전을 꾀하는 일에 이바지했겠다.

불은 굽고 끓이고, 삶고 반죽하는 요리의 발견으로 이어졌겠고, 인류의 건강과 생존을 한 단계씩 발전시켰겠다.

‘~겠다’라는 추측의 꼬리말을 쓰는 건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날 것으로 먹는 일이 꽤 있다. 물고기를 회로 먹는다든지, 상추와 배추에 음식을 싸서 먹는다. 전라도에서는 소를 잡아 회처럼 바로 먹기도 한다.

이를 ‘생고기’라고 부르는데 전라도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얼린 적이 없는 고기를 생고기라 일컫는다.

전라도에서는 홍어를 날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 얼마 동안 삭힌 뒤에 톡 쏘는 맛을 즐긴다.

외국에서도 소고기 스테이크를 설익혀서 먹는 ‘레어(rare)’가 있고, 덜 익혀 먹는 ‘미디엄(medium)’, 완전히 굽는 ‘웰던(well-done)’이 있다. 우리 할머님께서 ‘땅감’이라 불렀던 토마토도 코 큰 사람들은 익혀 먹기도 한다.

감자는 날로 먹지는 않지만 익혀서도, 구워서도, 튀겨서도 먹는다. 병균이나 영양가를 생각할 때 먹는 방법이 제가끔 다르다. 아무튼 불 때문이다.

요새 우리나라에 햄버거 사건 하나 생겼다. 햄버거를 먹은 4살 어린이의 신장이 90% 가까이 손상되었고, 남은 삶은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단다. 어려운 말로는 용혈성요독증후군이라는데 덜 익은 고기 때문인지 우유와 마요네즈 같은 곳에 들어있는 대장균 때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햄버거 병’이라 불리는데 패스트푸드가 생활화된 외국에서는 낯설지 않지만 위험한 병이란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일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햄버거가 대한민국 생활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바쁜 하루에 먹는 시간을 줄여 일의 능률을 올렸고, 햄버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 인스턴트 음식 문화도 발달 했다. 불을 쉽게 이동할 수 있어서 생긴 일이다.

불을 떠올리다가 문화 떠오른다. ‘반짝’ 떠오른 생각(인스턴트)으로 문화가 생기고, 여러 사람이 함께 호응하면 문화로 정착한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여럿이 호응하면 문화가 된다.

문화의 고갱이는 ‘호응’이다. 문화는 관의 지시나 명령으로 만들 수 없고, 기발한 아이디어(날 것)라도 호응이 없으면 문화로 자리 잡기 어렵다. 문화는 함께 일구어야 하고, 더불어 어울려야 한다. 문화 또한 바짝 익혀야 정착한다는 뜻이다.

한때 트위터 대통령이라고도 불렸던 소설가 이외수 님이 말씀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하는 사람이 있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문화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하는 문화가 있다.

‘부패’는 썩는다는 뜻이고, ‘발효’는 익는다는 뜻이다.

참여정부 때 추진했던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광주를 변화시킬 작은 불이자 대한민국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큰불이다. 문화의 중심이라는 광주를 썩게 만들 것인지 익게 만들 것인지 문재인 정부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광주시민과 대한민국 더 나아가 아시아를 생각하는 문화를 꾸리면 썩지 않고 익게 될 것이다.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낸 세금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광주와 대한민국의 앞날이 달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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