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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입문이 빠른데
△1987년 6월항쟁 이후 12월 대선전 시위사건으로 수배돼 1988년 6·10항쟁일 1주년을 맞아 남북청년학생회담 촉구 시위 때 구속됐고 88년 12월에 석방됐다. 89년 복학했고, 90년에 군에 입대해 93년 제대했다. 고흥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데 그해 7월에 민주당 이기택 대표실의 문희상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생회장 출신을 당 대표실 비서로 영입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고민 끝에 손용후 전 서울대 학생회장과 함께 민주당에 들어왔다. 스물아홉 나이에 첫 직장이자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정치권에 일찍 뛰어든 배경은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제1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을 역임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87년 6월항쟁을 시작해 대통령직선제까지 끌어 냈다. 국민은 민주정부 수립 요구했으나 양김(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열로 그 열망에 부합하지 못했다. 결국 노태우 씨가 대통령에 당선돼 3당 합당까지 이어지니 회의가 들었다. ‘민주진영이 반드시 정권을 잡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서 이를 실현해 보고자 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경기 광명을 선거구에 출마했다. 언론에서는 ‘전대협 출신 정계 진출 1호’라고 했다. 전대협 출신들은 이후부터 당과 국회 보좌진 등 제도권 정치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생 때부터 우리 사회 문제의식을 체득하고 목소리를 내온 경험은 정당에서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사회변혁에 대한 주도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고 86세대라는 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농어촌 문제에 대한 관심도 정계 진출에 한몫을 했다.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쌀 등 농수산물 수입 개방이 시작되면서 농어촌의 피해가 커지면서 농어민의 생존권을 대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
△고교 때까지는 문학가가 꿈이었고 선생님도 권유했다. 그러나 82년 박관현 열사가 옥사하면서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벌어졌고, 당시 전남대 농대 쪽에 가까웠던 전남고까지 번지기 일쑤였다. 매일 고교 운동장에 최루탄과 선전물이 뿌려졌고 시대의 아픔에 귀를 열게 됐다. 우리가 중·고교 시절 배웠던 교육은 현실과는 너무 달랐다. 대학에 들어와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 80년 5월 민주화운동을 알게 됐고 문학을 하겠다는 꿈을 접었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사회개혁과 변화가 절실했다.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 군사독재가 종식돼 민주정권이 들어서야 이 나라가 제대로 서겠다고 생각했다. 학생운동에 매진하다 보니 과대표를 맡아 일하게 되었고 이후 총학생회장에 출마했고 당선됐다.
-전남도당 위원장에 취임한 지 한 달 남짓이다.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전남도당의 균형과 공정이다. 민주당 전남도당은 정치적으로 서부권에 집중됐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제는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동부권에 제2 전남도당을 마련하고 선거의 기본이 되는 각급 지역위원회 중심의 새로운 전남도당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법상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정당법 개정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도당 연수원이나 교육원도 설치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그래서 전남지역의 젊은 미래 정치인을 발굴하고 교육해 최종으로는 제도권에 포용될 수 있도록 인재양성 시스템 구축을 해보겠다. 그래서 내후년에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재집권하고 승리하겠다.
풀뿌리 지방자치가 민선 7기까지 왔다. 변화가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는 지도자의 정치적 이념과 행동양식을 배워왔다면, 이제는 전문화된 사회개혁, 농어촌의 변화와 개혁을 끌어낼 역량이 필요하다.
-시도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역의대 유치, 광주 군 공항 이전,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복합적이고 굵직한 현안이 부상하는 상황이다. 이것을 정치권에서 소통하며 풀어나가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섭 광주시장이 거론한 걸로 안다. 다만 사전에 전남도와 긴밀한 교감을 나누고, 전략적으로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있다. 빛가람혁신도시를 만들어 광주전남이 상생의 길을 걸어온 경험이 있고, 통합은 시대적 흐름이고 대세이다. 전남도와 광주시가 머리를 맞대고 여러 문제들과 로드맵을 차분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내후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 합쳐서 1명의 단체장만 뽑자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용이 중요하고 시너지효과가 나와야 통합의 명분이 있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정치권이 이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민주당 광주시장 위원장과 전남도당 위원장이 함께 만나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광주와 전남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한 뿌리이다. 장기적으로 전남과 광주의 통합은 인구감소, 지방소멸 위기와 지역 균형발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절대 통합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용돼서도 안 된다. 통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이 공동으로 주도하는 교육·정책연구가 선행돼야 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광역교통망과 SOC 구축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이에 따라, 많은 계획들이 수정되고 달라지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계층, 그룹, 지역이 공론화의 장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광주 군 공항 이전사업이 지지부진하다
△6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법은 군 공항 이전 적합지를 발표함과 동시에, 해당 지역에 대한 지원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다음 단계인 후보예정지역단계에서 이전지역 지원방안이나 발전방향에 대해 발표한다는 것은 너무 안일하고 무책임한 계획이다. 대상지 주민들이 합리적인 기준을 갖고 찬반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원인을 제공한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광주시와 국방부는 지역민들의 불안만 키워놓고 책임지려는 행동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대구 군 공항 이전사업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이전 후보지에 대한 공공시설 투자와 적극적인 행정 배려를 약속하고 주민설득에 나서면서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기부 대 양여’ 방식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신공항 건설에, 먼저 투자하고 나중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투자자는 많지 않다.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군 공항 이전 특별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공공기관 시즌2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광주시는 에너지, 정보통신, 문화예술 등 7개 분야 35개 기관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고, 전남도는 구체적인 기관명까지 명시해 42개 공공기관 유치를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희망기관들이 겹쳐,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 나오고 있다. 광주와 전남의 공동번영을 위한 배려와 전략이 필요하다. ‘광주·전남 4자 연석회의’를 제안한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각자도생은 경쟁력 저하의 길이며, 공멸의 길이다.
공공기관 이전 2단계는 행정수도 이전 완성과 맞물려 상호보완적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여기에 광주·전남의 생존전략이 있다. 지난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에 호남권에 이전된 기관은 29개, 전체의 8%에 그쳤고 오히려 수도권에 157개(43.4%)가 배정됐다. 국토 균형발전의 대전제 아래,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소멸위기 지역과 공공기관이 적게 배정된 지역에 우선 배정돼야 한다. 이러한 전제들을 십분 활용해 현명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구 최우선 사업은 무엇인가
△고흥 녹동에서 장흥 수문을 잇는 연륙교 건설이다. 국도 77호선 경유지로 국토교통부가 승인했고, 이제 기획재정부 승인만 남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지난달 장흥·고흥 지방의원들과 함께 지역민 1만 5000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남해안 관광산업의 중요한 매개가 될 것이다. 고흥·보성·장흥·강진은 잠재적인 관광자원들이 많은데 연륙교 건설로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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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 과제는
△정권 재창출이다. 집권여당이 정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 당이 지향하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거기에 대한 국민적 기대치가 아직은 많이 남아있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결국 방역과 경제, 두 가지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정당, 세력, 인물이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 야당은 국민에게 새로운 대안이 되거나 가능성 있는 수권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여전히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하고 미래지향적 정책을 구사하는 한, 상대적으로 민주당에게 가능성은 더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생 목표 무엇인가
△한반도 분단 구조를 혁파하고 새로운 전기를 이루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나 남북-북미 관계의 흐름을 보면 통일은 우리 세대의 힘만으로는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구축을 위해 평화협정까지라도 끌고 가야 한다. 한반도의 번영을 위해 가야 할 길이다. 또 남북교류를 확대하고 평화롭게 왕래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한때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다. 이 정도 된다면 우리 시대가 해온 일들의 절반 이상을 이루는 것이니 만족할 수 있겠다.
-삶의 고비가 있었다면
△학생운동 때는 외길을 달려오며 민주화와 사회개혁을 외쳤고, 정치권에서 양극화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삶이 고비라면 고비였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내 인생이 ‘평탄하지 않았다’고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개혁을 위해 애써온 많은 사람들과 견준다면 결코 굴곡이 심하다고 말할 수 없다. 80년을 전후로 수많은 시민·학생운동 선후배들의 삶은 더 고비가 많았고 희생이 더 큰 삶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름 없이 묵묵하게 희생했던 분들은 수없이 많다. 모두 기꺼이 함께했던 학생들과 시민들, 기꺼이 함께 희생하셨던 그분들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그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전달하고 이어나갈 의무가 있다.
-86그룹 정치인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잠깐 잊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아마 모두 ‘빚을 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 대열에 함께했던 정치인들은 그런 부채의식 갖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정신을 대변하고 계승하려는 역할을 계속하는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면
△정직이다. 정치하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다. 지역구를 물려주셨던 박상천 의원도 정직을 강조했다. 정치인은 국민과 지역민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또 하나는 신독(愼獨)이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면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취미는
△서예를 한다. 93년에 처음 국회에 왔을 때 의원회관 8층에 서도실이 있었다. 붓을 잡은 것은 19대 국회의원 때부터다. 청암(靑菴) 고강(高崗) 선생께서 가르쳐주었다. 지금은 초당(草堂) 선생이 와 계신다. 21대에 다시 결성된 국회 서도모임(회장 송영길 의원)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국회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글씨에 마음을 담고 뜻을 새기며 집중하면 금세 차분해진다.
-늘 건강해 보이는데
△틈나는 대로 걸어 다니고 계단을 통해 오르락내리락 이동한다. KTX를 타러 갈 때도 그렇다. 집에 있을 때도 계단을 이용해 아파트를 오르내린다.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를 한 적이 있는데 기초가 됐다.
-김승남은
△65년 고흥 출생 △전남고·전남대국문학과 졸업 △전남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 △민주당 원내총무실 전문위원 △광주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민주통합당 수석사무부총장 △19대 국회의원(고흥·보성, 통합민주당) △21대 국회의원(고흥·보성·장흥·강진,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
이성오 기자 solee235@gwangnam.co.kr 이성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