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恨’…가슴 울리는 감동 전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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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판소리는 ‘恨’…가슴 울리는 감동 전하고파"

남도예술인(송혜원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6호 춘향가 이수자)
중학교 2학년 때 입문 후 소리 공부 매진
‘동초제’ 특성 살려 판소리 다섯바탕 섭렵
"희로애락 노래해"…국악중심 ‘연’ 활동도

송혜원씨는 “소리는 한(恨)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가닿는, 가슴을 쿡쿡 찌르는 소리로 감동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전화기 건너 넘어오는 목소리가 역시 소리꾼이구나 싶었다. 약간 거친 듯 하면서도 대찬 소리가 올곧게 전해진다. 짧은 통화 끝에 만남의 약속을 잡고, 몇 가지 질문들을 정리해본다. 사실 내공 깊은 예인들을 만나는 자리는 설레면서도 한편 꽤 긴장이 되는 일이다. 그가 걸어온 예술 여정에 잠시나마 동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포스’ 같은 것에 대한 경외가 들어서기도 하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한 날, 수완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소리꾼 송혜원씨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는 목소리만으로 그려봤던 소리꾼의 모습은 아니었다. 친근한 언니 같기도 하고, 감수성 풍부한 소녀 같기도 했다. 허나 자신의 예술 인생을 술술 풀어내는데, 외형과는 또 다른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다시 한 번 ‘과연 소리꾼이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송혜원(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6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소리에 입문했다. 판소리계는 ‘걸음마 떼면서부터 했네’, ‘유치원서부터 시작했네’ 하는 판이라, 그의 시작은 그리 빠른 게 아니었다.

“당시에 제 친구가 소리를 했어요. 어느 무대이든지 학교에서 행사 때마다 그 친구를 세웠죠. 그런데 제가 듣기엔 영 아니었거든요. ‘내가 더 잘하겠는데?’ 생각하다 정말로 제가 소리 쪽으로 발을 디디게 된 겁니다. 어려서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소리꾼으로 살아가고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이건, 그가 판소리와 첫 연을 맺게 해준 박미정(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6호 동초제 춘향가 전수조교) 선생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체격도 조그맣고 남들보다 몸도 약했던 송씨는 특히 아주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나간 ‘호남예술제’에서 그는 자신을 향한 관객들의 시선에 겁을 먹고 엉엉 울면서 소리를 했다. 말은 또 잘 듣는 학생이었던지라, 종이 울리면 내려오라는 선생의 말을 듣고는 종이 칠 때까지 성실하게 노래했다.

송혜원 판소리 발표회 ‘동초제 춘향가’ 무대 모습.
이 같은 성실함은 송씨의 소리인생에 큰 무기가 돼줬다. 광주예고에 진학했을 때 일이다. 아주 어려서부터 소리를 한 친구들의 실력은 그를 기죽이기 충분했다. 그가 듣기로는 선생님들처럼 잘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그렇게 연습 해봤자 똑같은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그에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그때 송씨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결심했죠. 결국 네가 나한테 소리를 배우러 올 거라고. 꼭 그렇게 만들 거라고 주먹을 꽉 쥐었었어요. 그 이후 정말 죽어라 연습을 했습니다. 원래 실력이란 게 하루아침에 안 늘잖아요. 조급해 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나중엔 훌쩍 실력이 늘 것이라 믿으면서 묵묵히 했죠.”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발딱 일어나 연습실로 내달렸다. 10분의 귀한 시간, 잠깐이나마 소리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친구들은 처음엔 놀리다가, 나중에는 혀를 내둘렀다. 몇 번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쉬는 시간 마다 연습하러 가는 그의 모습이 놀라워서였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연습을 했냐고 묻는데, ‘대중이 없었다’고 답한다. 정해놓고 한게 아니라, 시간이 날 때 마다 악착같이 소리공부에 매진한 것이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막말을 했던 그 친구가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그에게 “야, 이 소리 좀 해봐라. 나 좀 가르쳐주라”한 것이다.

“그날 집에 와서 엄청 울었어요. 남들보다 조금 늦은 입문이라는 게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거슬러 이긴 것 같았으니까요. 오히려 늦었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소리는 동초제다. 광주는 서편제나 강산제 소리가 주를 이루는 곳이라, 예고 시절에 친구들이 송씨의 소리에 이질감을 느꼈을 만도 하다. 절절 끓는 애절함 보다는 맺고 끊음이 분명한 동초제는 소리를 ‘정확하게’ 또 ‘야무지게’ 한다는 송씨와 잘 어울리는 유파다.

“동초제는 가사 전달이나 문학성을 중시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극적인 요소가 참 많아요. 다른 유파보다 완창시간이 더 긴 이유죠.”

춘향가는 완창에 이르기까지 8시간30분이나 걸린다. 그는 춘향가를 두 번에 나누어 완창했고, 4시간이 훌쩍 넘는 흥보가와 적벽가도 완창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느냐 묻자, “꾸준히 하면 습관처럼 힘이 붙는다” 한다.

“완창 무대에 서면 머리가 하얘져도 그냥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지경까지 가요. 생각하면서 한다기 보다는 오랜 시간 하면서 몸이 습득한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것이죠. 무대에 내려와서는 온 몸이 아프지만, 그 위에서만큼은 짱짱해요.”

그는 국악중심 ‘연’ 상임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는 국악중심 ‘연’ 상임 단원으로 무대에 선다. 무대에 올라 소리를 하다 보면 체력은 바닥이 나더라도, 가슴 속은 오히려 후련해진다고 한다. 몸 속에 내재돼 있는 ‘끼’들을 한껏 풀어냈기 때문일 터.

그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배웠다. 30대 후반의 소리꾼들 중 다섯바탕을 섭렵한 사람은 드물다. 송씨는 배움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저 어떤 스토리가 풀어져 나올지 궁금해 공부했다.

“판소리의 노랫말이 정말로 좋아요. 사실 관객들은 고어나 시김새 때문에 가사를 완벽히 듣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소리꾼들은 가사를 다 이해하고 부르거든요. 어려서는 기계처럼 외운대로 내뱉었다면, 나이가 먹을수록 달라져요. 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소리로 흘러나온다고 할까요. 흔히 소리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고 하는데, 딱 맞는 것 같습니다. 70대 선생님들도 소리하기 어렵다고 하시잖아요. 하면 할수록 실력도 늘겠지만, 또 인생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겨져서겠죠. 그래서 판소리는 더욱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송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춘향가 중 ‘천지삼겨’, 심청가 중 ‘추월만정’ 대목이다. 춘향이 몽룡을, 심청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대목으로 모두 관객을 울리는 슬픈 내용이다.

그는 음역대가 굉장히 높다. 소리에 애절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송씨의 타고난 상청 덕이다. 방성춘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6호 판소리춘향가 예능보유자) 선생은 ‘벌이 쏘는 듯한 전율이 있다. 아무나 못 갖는 타고난 소리’라고 평가한다.

송씨의 꿈은 두 가지다. 소리꾼으로서 최고 영예로운 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일과 어렸을 적 그리던 미래의 제 모습을 실현하는 일이 그것이다.

“음악교과서를 보면 판소리 분야의 최고 선생님들이 소개됩니다. 제가 공부할 때는 김소희·박봉술 선생의 사진이 실렸었고, 음악 시간에 그분들의 음원을 들었어요. 흘러나오는 선생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옆으로 제 얼굴과 제 이름을 새겨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훗날, 대표 소리꾼으로서 송혜원이 소개되길 바라면서요.”

지금까지 열심히 소리를 해 왔다. 어쩔 수 없는 슬럼프가 올 때 마다 든든한 남편이 곁에서 힘을 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그다. 이제껏 소리하면서 받은 사랑을 널리 나누면서 살자는 게 그의 목표다.

“소리는 한(恨)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가닿는, 가슴을 쿡쿡 찌르는 소리로 감동을 주고 싶어요. 진심이 통한 노래는 1분 만에도 청중을 울릴 수 있거든요. 제 노래로 누군가를 웃음짓게 하고 또 울게도 만드는, 그런 소리꾼이 되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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