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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조문현씨는 “물질만능의 팽배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물질과 정신의 조화가 중요한 만큼 제 그림이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조 작가는 전남 화순 이양에서 자랐다. 시골이다보니 종이가 넉넉하지 않아 그림 한번 속시원하게 그려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그림이 마냥 좋았다. 그릴 데를 찾다가 눈에 보이지 않자 문풍지에 그렸다. 먹물로 그럴싸하게 그려 제꼈다고 한다. 그런 그림들이 어린 마음에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옛날 달력에 많았던 심산유곡의 산수 풍경을 따라 그리곤 했다. 가르쳐줄 선생도 있을리 만무한 시골에서의 유일한 선생은 달력 안 산수 그림들이었다. 말이 없는 스승이었지만 늘 마음에 와 콕 박혔다. 마음에 박힌 것들은 당최 빼내기 어렵듯이 그에게 화가로서의 꿈을 단 한번도 접을 생각을 하지 않게 한 지주(支柱) 혹은 심지(心志) 같은 것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는 혼자 그림을 열심히 연마하다 보니 물 조절까지 가능하게 됐다고 술회한다. 다만 그는 그 당시의 그림을 남겨놓지 못해 아쉽다는 반응이다. 사실 그의 집안은 예술과는 그닥 인연이 없었다. 부친이 흥이 있어 노래를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훗날 그의 아우가 사진을 전공했지만 그가 예술가로 성장해 활동을 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예술가의 족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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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가 있는 풍경’ |
“대학 때는 일상적으로 하는 것들을 했죠. 한국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먹 작업 같은 것에 집중하며 보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먹 작업이나 채색 그리고 재료구현에 관한 생각에 집착하지는 않았거든요. 저만의 세계를 어떻게 구축할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았나 싶죠. 또 이 무렵 자연 현상 등 일상을 그렸지, 저만의 뚜렷한 방향을 찾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러다 자신의 최종 지향점처럼 다가온 것이 달항아리다. 달항아리로 작업을 한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그는 달항아리의 완결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달항아리를 자신에 맞는 옷처럼 만들기 위해 오랜 고민 끝에 관련 도서 등 여러 자료들을 섭렵해야 했다. 그는 우선 달항아리가 가장 한국적이고, 우리 민족의 선경이라는 점, 백의민족, 아울러 어머니의 품속을 상징화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한국도자문화의 대표 표상이 달항아리라고 밝힌다. 그는 달항아리를 보면 누구나 편안한 느낌을 갖는 등 한국적 정서를 함유하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우리 민족에게 깊고, 크고, 넓다는 의미의 ‘한’ 사상을 포용하고 있는 것 역시 달항아리로 인식한다. 무소유 또한 달항아리로부터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무소유의 의미를 아예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여백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서양에서는 평면에 100%를 다 채우지만 한국에서는 비워둔다. 그에 따르면 여백 또한 그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화 여백은 보는 그림이 아니라 보아가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오한 마음의 투영이라고나 할까요. 명상이나 사유의 정신이 달항아리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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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가 있는 풍경’ |
여기다 해까지 달항아리 화폭 속에서 반추한다. 해는 양이고, 달항아리는 달이니까 음이라는 그는 음양의 조화까지 언급한다.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라고 하는 음양오행 사상이 동양 사상의 근원으로, 이런 내용들을 가감없이 반영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줄곧 보고 있노라면 그냥 그림을 그렸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하다. 그는 그냥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 3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그가 사상적 고민을 얼마나 했는가를 직감할 수 있는 대목은 많다. 이를테면 장성 백양사 경내 ‘이 뭣고’ 탑비는 그에게 일관된 회화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탑비의 화두인 ‘나는 누구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구해 보면서 명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금까지 그림을 해올 수 있었다. 이때 그는 한지와 유화, 나이프, 아크릴이라고 하는 소재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후 테마는 명상을 유지한 채 컬러로 화폭을 일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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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가 있는 풍경’ |
그는 마지막으로 화가로서의 평가와 계획에 대해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화가들 누구나의 꿈처럼 붓을 놓지 않고 미술 한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입니다. 미력하겠지만 제 작품으로 현대 회화사 발전에 일조하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죠. 현재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달항아리를 연구하는 동시에 물질만능의 팽배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물질과 정신의 조화가 중요한 만큼 제 그림이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거든요.”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