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좇아, 자신만의 색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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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좇아, 자신만의 색 불어넣다"

[예술인플러스] 팝 플루티스트 나리
클래식·대중가요·트로트까지 레퍼토리 다양
역동적인 연주 특징…‘앙상블DIO’ 활동 펼쳐
장르적 한계 거둬…"기교 아닌 마음으로 소통"

나리는 “기교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에서 자연스레 비춰지는 연주들로 관객과 오래 오래 소통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플루트를 처음 쥔 것은 초등학교 음악시간이었다. 리코더로 수행평가를 치르는데, 그 연주가 나리의 마음을 훔쳤다. 처음엔 리코더를 불다가, 플루트로 갈아탔다. 옆집에 살던 중학생 언니의 조언 덕분이었다. 리코더 보다 플루트로 시험을 치르는 것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길로 방과 후 클래스로 마련됐던 플루트반에 들어갔다. 그의 심상찮은 날숨을 캐치한 지도교사가 나리에게 “플루트 전공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해왔다. 마음은 이미 플루트의 길로 가고 있었지만, 섣불리 결정하지는 못했다. 클래식 음악의 길로 간다는 것은 재정적인 뒷받침이 든든해야만 함을, 어린 나이에도 잘 알았던 터였다. 다들 어려웠던 IMF때 가세가 기울었고, 나리의 집안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딸의 재능을 살려주고 팠던 어머니의 결단으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 전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의 재능은 “나리는 돌연변이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귀했다. 가족들 중에 예능의 ‘끼’를 가진 자는 나리가 유일해서다. 차분했던 집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어려서부터 그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늘 친구들에게 폭 둘러싸여 지내던 활발한 아이였다. 그러한 끼들이 무대에서 발산됐는데, 플루트 뿐 아니라 그의 몸짓과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그의 연주를 본 동생은 “눈썹으로 연주하냐”는 말을 전했을 정도. 연주에 깃든 희로애락을 표현할 때 숨을 위한 입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나리의 눈썹이어서다. 얼마나 그가 격정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지가 눈에 선연히 그려진다.

“플루티스트 하면, 우아하고 여성 여성한 스타일의 모습을 떠올릴 거예요. 저는 그런 그림과는 조금 거리가 있죠. 외형적인 모습 뿐 아니라 연주 스타일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제 자신이 뛰어난 플루티스트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대에서는 늘 재미있고, 유쾌하게 즐기면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플루트에 ‘팝’이란 장르를 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다. 클래식 뿐 아니라 대중가요부터 전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까지. 나리는 다채로운 연주를 커버한다. 단순히 플루트로 이를 연주하는 것을 넘어 플루트에 맞게 다듬고, 또 MR을 편집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곁들이고 있다.

이 같은 나리의 자유로움은 그의 연주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떤 틀에 갇혔다고 생각하면 늘 슬럼프가 찾아왔었다. 슬럼프는 딱 두 번 찾아왔는데, 고3 입시 시험을 앞두고 한 번, 또 프랑스 유학 중 졸업 연주회를 앞두고 한 번이었다. 소리가 엉망으로 나거나, 손이 안 움직이곤 했다. 뭔가 연주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면, 그의 날숨에도 문제가 생기는 식이었다.

나리는 광주·전남 ‘청춘마이크’ 우수예술인에 선정, 공연 활동을 펼쳤다.
“슬럼프에서 저를 건져 올린 것은 바로 자유로움이었어요. 입시를 앞두고, 헤매고 있는 저에게 선생님께서 그러셔요.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불어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소리가 10분 만에 제 컨디션을 찾아갔습니다. 뭔가를 잘해야 한다는 제 안의 욕심이 생기게 되면 연주에 꼭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더라고요.”

2011년 프랑스 유학 공부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2년 마지막 과정 중 졸업을 앞두고 연습을 하는데, 혼자서는 잘만 되던 것이 선생 앞에만 가면 손이 딱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선생이 해준 조언이 바로 “여유를 찾아라.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녀라”는 것이었다. 정말로 플루트를 조금 내려놓고, 삶의 여유를 찾으니 소리도 돌아왔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마음을 짓누르는 어떤 ‘압’이 없어야만 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지혜가 그것이다.

“돌아보면 유학 중에 참 많은 것을 배웠어요. 대개 레슨에서 ‘숨을 적게 내, 빠르게 내’ 등 기교적인 부분들을 짚어줬다면, 유학 중에는 ‘따뜻한 느낌으로 숨을 불어봐’, ‘여유롭게 숨을 쉬어봐’ 이렇게 잡아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감을 못 잡았죠. 하지만 실제로 숨에 온기를 넣고, 안 넣고에 따라 연주의 분위기가 바뀌더군요. 정말로 큰 가르침을 받은 것이죠.”

무대는 나리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마주하면서 살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다. 사실 나리는 플루트를 시작하고 진로를 정할 때, 두 길에서 고민했었다. 보다 안정적인 교육자로 갈지, 무대에 서는 연주자가 될지 많은 전공자들이 기로에 서는 순간이다. 나리는 사범대로의 진학도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보다 플루트 연주자로 관객들을 만날 때 그가 더 활짝 웃는다는 것을 알았다. 미련 없이 “아 나는 천상 연주자인가 보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렇게 연주활동에 주력했다. 호남필하모닉과 아시아아트, 피아트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을 맡았고, 2018년부터는 클래식과 팝을 겸한 팝 플루티스트 연주자로 또 공연 기획으로도 발을 넓혔다. 앙상블 ‘DIO’ 팀을 꾸려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광주 ‘이승규 작곡 음반 발표회’ 협연자로 무대를 꾸민 나리.
누군가는 팝 플루티스트를 지향하는 그에게 ‘클래식의 수치’라는 말도 서슴없다. 처음엔 남 몰래 가슴앓이도 했지만, 이제는 아랑곳 않는다.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야만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맛보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팝 플루티스트란 이름이 대중에게는 낯설고, 또 역동적인 플루트 연주의 모습을 상상하는 이들도 많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의 연주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 중 한사람이라도 내 연주의 감정과 느낌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연주라고 생각해요.”

가장 ‘나리다운’ 음악의 길로 향하는 그의 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전국에서 ‘팝플루티스트 나리’의 자유로운 연주들을 선보이면서 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이전의 제 연주는 어떤 틀에 갇혀있었죠. 어떤 건 맞고, 또 어떤 건 틀리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연주는 하면 할수록 그 한계가 없음을 느껴요. 아직 저는 부족하지만, 어떤 장르도 유연하게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기교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리고 삶에서 자연스레 비춰지는 연주들로 관객과 오래 오래 소통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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