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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진혼무 촬영 현장. |
5분여간의 작품을 위해 장장 10시간 물속에서 춤을 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위로, 진심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을 터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며 물속에서 열연, 진혼무 ‘기억되지 못하는 운명들의 기억’을 유튜브로 선보인 홍은주(한국무용수) 전남도립국악단 무용부 단원이 그 주인공이다.
무용수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기발한 일은, 지난 1월부터 기획됐다. 코로나 탓에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기 어려웠던 상황도 한몫했다. 무대에 설 수 없으니, 새로운 ‘판’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 중심에는 류형선 전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이 있었다. 단원들도 머리를 맞댔다.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다. 물속, 갯벌 등 이전엔 생각지 못했던 곳들은 물론이고 고흥 나로호 우주센터 ‘무중력’ 공간에서의 춤 이야기도 거론됐다. 그 중 채택된 것이 ‘물’이었다.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슴 아픈 기억 ‘세월호’였다. 예술인들은 4월, 7주기를 맞는 세월호를 기리고, 희생자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는 수중 춤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잊지않을게요’란 노란 리본조차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죠.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진 부분들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여전한 아픔에서 헤매고 있는 분들 모두에게 힘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슬픔을 나눠지는 것, 그리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여기 있음을 전하고 싶었죠. 물속에서의 진혼무는 그렇게 기획됐습니다.”
홍 단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네 수영장 회원권을 끊는 일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것은 둘째고, 원체 물을 무서워하는 기질 이어서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물과 친해지는 일이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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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하는 운명들의 기억’ 영상 화면 일부. |
프로젝트 촬영 직전까지 주변에서는 “할 수 있겠어?”란 진심어린 걱정들이 많았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도 힘든데 춤을 춘다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시도 자체가 처음이기도 했고, 사진이 아니라 영상콘텐츠로 제작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어서다.
촬영은 2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한 수담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그곳에 성인 한 명이 들어갈 만한 수조가 마련돼 있었다. 수심은 홍 단원이 까치발을 들면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내심 단단히 준비했지만 현장에서의 고난은 예상보다 컸다. 제 멋대로 움직이는 의상과 하얀 천은 몇 번이고 다잡아도 어그러지기 마련이었다. 5분 여 영상작품을 만드는 데 10시간 이상이 소요된 까닭이다. 홍 단원 뿐 아니라, 현장에는 류 예술감독과 무용부 박현미 수석·정주화 부수석 등이 함께했다. 선배들은 홍 단원이 물속에서 헤맬 때 방향을 잡아주고, 용기를 주며 응원했다. 그가 “이 작품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여기다 코로, 입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고, 귀마저 먹먹해졌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일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다. 그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과 공포감 그리고 답답함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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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하는 운명들의 기억’ 영상 화면 일부. |
영상은 큰 아픔 속 기어이 살아내야 하는 이들의 쓸쓸함을 눅눅한 연민의 몸짓으로 끌어안는다. 그런 그의 진심들은 손짓과 발짓, 표정에서 진정성 있게 드러난다. 처음에 그는 느낀 그대로 공포를 표현했다. 수면 위에 떠 있는 몸과 하얀 천의 움직임은 갑갑한 물속에 또 한 번 갇힌 답답함이 전해진다. 보는 이 마저 숨이 막혀오는 듯하다. 이윽고 천이 거둬지고 흑백 화면 속에서 홍 단원은 살풀이를 춘다. 훠이~ 하얀 천을 날리고, 손짓으로 스스로를 가리키기도 한다. 물속에서 마주하는 무용수 자신의 모습을 담기 위해 거울을 특별히 제작해 수조에 넣었다. 마지막에 그는 거울을 힘차게 두드린다. 여기서 나갈 수 없는 두려움, 갇혀있음에 대한 고통스러움을 몸짓으로 풀어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승무·살풀이를 전공했던 그였기에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그와 잘 맞아떨어졌다. ‘깔끔함’이 특징인 그의 몸짓은 어쩌면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첨가물 없는 투명함이 강점으로 꼽힌다. 흑백 미장센과 그의 하얀 의상 그리고 몸짓이 잘 어우러진 이유일 것이다.
“넋을 기리는 춤이므로 몸짓 하나 하나에 조심스러움을 더했습니다. 괴로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있어 죄송한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꼭 기억하고 기림으로써 위로를 전하는 게 이번 진혼무의 시작이었기에, 어느 무대에서보다 더 진심으로 춤을 췄습니다.”
촬영을 마치고선,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눈은 빨갛게 충혈됐고 귀가 먹먹해 잘 들리지 않았다. 2~3일은 코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육체적인 고됨을 잊게 해준 것은 후에 공개된 작품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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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하는 운명들의 기억’ 영상 화면 일부. |
앞으로도 그는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수중 춤을 선보였으니 이후엔 정말로 “뻘밭에서 춤을 춰볼까 한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곧 도전할 모양새다.
“갯벌에서의 춤은 물속보다 더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물속도 가능할까? 했던 것을 실현시켰으니 자신감이 생긴 것은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춤판’의 무한한 확장을 목격했죠. 코로나가 장기간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무대가 아닌 야외에서의 공연 등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전통예술의 힘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