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마음의 결 담아…울림 주는 연주 선사"
검색 입력폼
남도예술인

"고운 마음의 결 담아…울림 주는 연주 선사"

남도예술인(가야금병창 연주자 장혜윤)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문해 가야금병창 배워
진도국악고교서 후학 양성·연주자 길 ‘매진’
"가슴에 닿는 소리…소통하는 연주자 꿈 꿔"

장혜윤씨는 “단 1명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연주라고 생각한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연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개인발표회를 4시간여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공연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 그와 나는 마주앉았다. 처음 가야금을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개인발표회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기까지. 26년여 세월이 흘러나왔다. 곧 무대에 설 연주자였지만, 떨림 같은 것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무대에 오르는 자 특유의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자신감 같은 것들만 엿보일 뿐이었다. 단단한 내공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근 빛고을국악전수관 공연장에서 ‘적벽, 소적벽’ 초청공연을 선보인 장혜윤(가야금병창 연주자)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가야금을 처음 쥔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음악 선생님이 그를 포함한 학생 8명에게 가야금산조를 가르친 게 계기가 됐다. 그 말을 빌리자면 당시 장씨는 그렇게 싫증을 잘 내는 아이였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일주일 이상 하면 금방 흥미를 잃었고, 그렇게 배우고 싶다던 피아노도 배운 지 보름도 안돼 덮어버렸다. 뭐든 진득하게 배우는 법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가야금만은 달랐다. 친구들은 며칠 연습하고는 물집이 잡혔네, 피가 나왔네, 난리가 났는데 장씨 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26여 년 가야금 현을 뜯는데 굳은살이 생긴 것 외에는 손에 이상이 생긴 적은 없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가야금병창의 길로 들어선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그때 문명자(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보유자) 선생을 찾았다.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소리를 하는 가야금병창은 그의 호탕한 성격과 딱 맞아떨어졌다. 실제 가만히 앉아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게 조금 심심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외향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과 어울렸던 그는 소리를 함으로써 이를 해소했다.

새로운 장르를 더해서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젓는다.

“가야금의 기초를 닦아뒀기 때문에 그 위에 소리를 얹어내는 것은 어려운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주와 내 소리가 어우러짐을 스스로 느끼면서 가야금병창의 매력에 더욱 빠질 수밖에 없었죠.”

그의 소리는 걸걸하고 또 걸쭉하다. 소리꾼들에게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다. 그는 요즘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예스러운 소리’라고 자평했다.

최근 가야금병창은 얇고 고운 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대세다. 트로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몇몇 국악인들처럼 예쁜 소리가 대중들에게 더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어서다. 서울·경기를 일컫는 ‘위쪽’ 지역은 깔끔한 소리라면, 소리의 고장 남도는 탁하고 무게감 있는 소리가 특징이다.

장씨는 원래 소리를 시작할 때는 얇은 소리가 났는데, 세월을 건너오면서 굵어지고 묵직해졌다. 그런 변화가 장씨만의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연주와 소리를 통해 마음을 표출한다. 국악이 희로애락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장씨는 그 말에 완전히 동감하는 바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면 가야금을 쥐었고, 좋은 일이 있을 적에도 소리로서 기쁨을 표현했다. 가야금병창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랜 친구처럼 그의 삶에 동행해온 것이다.

슬럼프는 애석하게도 고3 때 찾아왔다. 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 목소리가 안 나왔다. 입시 곡으로 수 백 번도 넘게 불렀던 노래 가사를 무대에서 까먹기도 했다. 실수가 반복되자 자신감을 잃었고, 급기야 “포기해야 하나”란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이 같은 흔들리는 마음은 곧 가야금으로 달랬다. 홀로 앉아 가야금과 대면하면서 찬찬히 돌아봤다. 거짓말처럼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슬럼프에 빠졌다는 생각 자체를 지워버렸어요. 내가 연습이 부족했으니 가사를 잊은 것이고, 목 관리에 소홀해서 대회 때 목이 나간 것이다고 인정하려고 했죠. 그랬더니 답이 명확해지더라고요.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가장 좋아한다. 이를 애창곡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대외적인 무대에서는 여태껏 한 번도 선보인 적은 없다. 소리의 기술적인 면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노랫말과 가락에 얽힌 감정의 깊이가 남달라서다. 소리에 담긴 감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 때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40대에 다가서고 있는 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한을 조금 알 것 같다”고 한다.



“학생 때는 스승님들이 가르쳐준 대로, 정석대로만 소리를 했다면 이제는 장혜윤만의 색을 얹어 연주하고픈 욕심이 조금 생겼어요. 듣는 이들의 가슴에 가 닿는 소리를 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전통이지만,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하기도 하죠.”

장씨는 현재 진도국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가 학창시절에 느꼈던 국악교육의 아쉬움을 교육 현장에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학교 음악시간에 교과서를 통해 만나는 국악은 ‘장구 몇 번 치고 마는’ 정도였어요. 서양음악은 이론부터 실습까지 탄탄히 가르치는 반면, 전통 국악은 그렇지 않아 늘 안타까웠죠. 제 전공인 가야금병창은 물론이고 국악 전반에 전통의 맛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열정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줘 늘 흐뭇한 마음이에요.”

교육자로서 그는 ‘인성’을 가장 중요시 한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더라도 마음결이 곱지 않으면 연주에서 당연히 테가 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한 길을 가고자하는 뚝심과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 바른 품성이 함께 한다면 좋은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운 인성이 자리하고 있다면,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연주에 당당할 수 있는 깨끗한 마음, 국악을 사랑하는 진심이 있어야만 하죠. 연주의 스킬을 키우고, 내공의 깊이를 채워가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인성’ 또한 갈고 닦아야 하는 이유예요.”

벌써 국악고 강단에 선 지 5년차를 맞았다. 그는 아이들을 제자라기보다는 같은 국악계 길을 걷는 후배들이라 생각한다. 지난 2017년에는 ‘제43회 전주대사습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장씨와 국악고 제1회 졸업생인 추지훈군이 나란히 차하, 장원을 수상해 겹경사를 맞기도 했다.

이번에 그는 15년 만에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연주자로서 또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늘 분주한 일상이지만, ‘초심’을 다잡으며 발표회를 마련했다. 발표회를 앞두고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함께 했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연습했다’고 전해줬다. 그 말을 듣고 장씨는 연주자로서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렇다면 ‘좋은 연주’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는 2010년 대상을 차지했던 ‘춘향국악대전’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해가 내리쬐는 무대에서 가야금병창 연주를 하는데, 객석의 두 모녀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그 무언의 눈빛이 저를 응원했고, 좋은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주란, 100명 1000명의 관객이 있더라도 단 1명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아 이게 가야금병창이구나’ 그 매력을 전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감동을 주는 연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