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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원 지휘자는 “광주와의 동행을 시작한 만큼 광주다운, 광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연주로 시민들을 뵙고자 한다. 관객들이 시향의 연주를 듣고,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뛰어난 연주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재미있고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관객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
홍석원 제13대 광주시립교향악단 신임 지휘자는 지난 4월1일 광주시향의 새 수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연주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취임연주회는 지난달 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성공리에 끝마쳤다. 홍 지휘자가 이날 공연에서 선택한 곡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었다.
그는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항상 자유를 좇았던 쇼스타코비치와 민주·평화·인권의 가치를 위해 불의에 맞섰던 광주의 지난 80년 5월의 역사에서 같은 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광주와의 동행을 시작한 만큼 광주다운, 광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연주로 시민들을 뵙고자 한다”고 청사진을 전했다.
홍 지휘자와 광주와의 첫 연은 지난해 8월 앞서 맺어질 ‘뻔’ 했다. 당시 광주시향 정기연주회에서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 지휘가 예정돼 있었다. 총 5번의 리허설 중 3번을 마친 상태였는데, 코로나19 탓에 돌연 연주회가 취소 됐다. 그는 공식 무대는 선보일 수 없었지만 그때 광주시향과 ‘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내내 드는 생각이 ‘궁합이 잘 맞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원하는 부분을 요구하면, 단원들이 바로 이해해주고 연주에 반영해주셨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주를 들으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묵직한 울림이 전해진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광주와 다시 연을 맺을 수 있게 돼 너무나 기쁜 마음입니다.”
지난 3~5일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라바와 함께하는 키즈 클래식’ 연주회를 열어 가족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어린이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으면 한다는 그의 바람을 담은 무대였다.
“라바는 제 아들도 즐겨보는 만화예요. 이번에 만화 캐릭터가 함께하는 무대로, 재미있는 분장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해설로 더욱 즐거운 연주회가 됐죠.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한 공연이라는 생각을 깰 수 있는 재미난 공연들을 앞으로도 많이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어 ‘5·18 기념 연주회’는 그를 비롯한 광주시향 단원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무대다. 이번에 올리는 작품은 모든 인류의 화합을 노래한 베토벤 ‘합창교향곡 9번’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유’라는 가치를 인간의 가치 중 가장 으뜸으로 꼽습니다. 1980년 5월은 제 기억 속에도 자리한 한국의 고귀한 역사이죠. 당시 자유를 외치다 희생되신 분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또 화합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이 같은 의미를 기리는 베토벤 합창교향곡 무대로 자유와 평화, 민주와 인권의 도시 광주의 이야기를 연주에 풀어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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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같은 작품을 또 지휘하게 되면 지겹지 않느냐고 물어요.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는 한 작품을 10회 이상 공연하는 일도 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악보를 볼 만큼 다 봤다고 생각했더라도, 다시 또 보면 항상 새로운 게 보입니다. 그것이 클래식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지요. 제가 공부한대로, 느낀 바대로 그 색을 입혀서 다른 연주로 선보일 수 있는 부분이죠.”
그는 최근까지 쇼스타코비치에 폭 빠져있었다. 취임연주회 때 선보인 ‘교향곡 5번’을 공부하면서 스탈린 체제 하에서 억압받으면서도 남긴 그의 작품을 수도 없이 마주했다. 그러자 이전에는 놓쳤던 부분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교향곡 5번 4악장의 피날레에서 승리의 팡파르가 나옵니다. 얼핏 듣기에는 화려하고 기쁘게 들릴 수 있지만, 당시 공산당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상황에 이입을 하면 또 다른 의미의 팡파르가 들려오죠. 마냥 기쁜 선율 속에는 예술가로서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절실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고자 했던 비장함이 들립니다.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돋는 이유죠.”
그는 지휘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자기 음악 해석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 또 하나는 음악적 해석의 차이도 받아드릴 수 있는 열린 자세다. 얼핏 들여다보면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나, 좋은 음악을 만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가치라 할 수 있다. 자기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만 단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관객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어서다. 여기다 혹여 다른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다면, 과감히 자신의 아집을 버릴 수 있는 ‘열린 귀’를 갖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그는 이 두 덕목이 적절하게 발휘될 때 좋은 연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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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저의 지휘 인생의 롤모델입니다. 두 대가는 단원들이 스스로 즐겁게 연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스타일이죠. 이들을 보고 있자면, 지휘하는 것을 정말로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광주에서 꾸는 꿈은 단출하다. 실력 있는 ‘친근한’ 연주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게 그것이다. 일상의 기쁨을 선사하는 수시연주회 ‘오티움’을 이어가는 한편, 내년에는 관객 연령대별로 맞춤한 콘셉트의 ‘세대별 브랜드 콘서트’를 구상하고 있다. 여기다 연주 전 ‘지휘자와의 대담’ 시간, ‘오픈 리허설’ 등 소통의 창구를 활짝 열어두고 시민들을 기다린다.
“모든 음악가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관객입니다. 관객들을 모시고 마음껏 공연하기가 힘든 최근의 코로나 시국에 더욱 절실히 느끼는 바죠. 광주시민들이 시향의 연주를 듣고,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뛰어난 연주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입니다, 재미있고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관객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지휘자가 되고 싶습니다.”
한편 홍석원 지휘자는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한스 아이슬러 베를린 국립음악대 지휘과 디플롬 과정 및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쳤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페라에서 발레, 심포니, 현대음악까지 모든 영역을 다룰 수 있는 지휘자다. 독일음악협회의 ‘미래의 마에스트로 10인’에 선발됐고,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 지휘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고 오스트리아 티롤 주립극장에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지휘를 맡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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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