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하산(下山)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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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하산(下山)의 지혜

정현아 경제부장

국가 규모에 비해 의외로 코로나19 방역에 고전한 나라를 들자면 단연 미국과 영국이다. 전통적인 강국으로 꼽히는 두 국가가 코로나19에 무력했던 이유를 정치,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절대왕권을 붕괴시키고 그 권력을 시민들에게 나누는 형태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시민 개개인의 권리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치, 사회풍토가 정착이 됐다. 때문에 코로나19 역습에도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정부의 권고나 도시의 셧다운 조치 등 코로나 방역활동을 시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당연히 정부에 협조하지 않았고 결국 방역이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유럽과는 반대다. 신대륙으로 건너가 새 나라를 세운 시민들은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영토가 광활하고 50여개의 여러 주를 묶어 합중국이라는 형태의 국가를 세워놓고 보니 중앙집권적 권력이 필요했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통치의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발전돼 왔다. 시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민과 권력을 집중, 흡수하려는 정부의 보이지 않은 줄다리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를 맞으니 국민과 정부 모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나서 혼란을 부추겼으니 코로나19에 두 손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두 나라 모두 1년이 넘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려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막강한 경제력으로 백신접종을 밀어부친 덕이다.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라는 백신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를 품고 있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와 시민의 권력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비단 코로나19 방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경제 등 사회 전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가와 정부에 대해 시민은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거나 옥죄려고 한다는 인식이 오히려 강화됐으면 됐지, 약화되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9월께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다주택 보유가 정치이슈가 된 직후였는데, 정부 여당이 부동산 문제에 골몰한 끝에 보유세 강화 등의 해법을 손에 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인사 왈,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내년 3~4월쯤이면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은 곡소리를 할 겁니다. 지켜보세요.”

이후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정치행사와 주요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 등에서 부동산 정책이 단연 이슈가 됐다. 그 때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힐난했고, 정부가 아니 나라가 거덜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여전히 수도권 집값은 공급 갈증과 전세난에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4월이 넘어서면서 부동산 관련뉴스의 빈도와 강도는 눈에 띄게 약해지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지난 6개월여를 되돌아보면 부동산 정책으로 대변되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반감이 얼마나 깊은지 부인할 수 없다.

가상화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과 한 두 달 전만 하더라도 가상화폐에 투자하지 않으면 원시인 취급에 벼락거지가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가상화폐장은 그야말로 투전판을 연상시킬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달아올랐다. 이때도 정부는 ‘주의’를 당부했고, 그래도 진정되지 않자 ‘경고’로까지 수위를 높였지만 가상화폐는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다 급기야 일론 머스크의 비트코인 폄하 발언과 처분이 나왔고, 이어서 미국와 중국의 가상화폐 불인정과 강력 대응 방침이 발표됐다. 연일 이어지는 ‘가상화폐 반토막’ 뉴스에 투자자들은 혼비백산이다.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나방처럼 가상화폐에 달려들었던 투자자, 아니 투기자들이 정부를 비난하는 등 반정부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경제는 심리다. 최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정부 스스로, 또 여당의 고위공직자들이 자초하고 키운 측면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상황 속에 서민경제와 생활이 피폐해지다 보니 길을 가다 돌부리에 넘어져도 나라 탓이라는 핑계를 대는 상황이다. 더구나 대통령 임기가 9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터라, 레임덕을 부추기려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집요한 불신 조장과 확대 재생산 노력도 더 집요해질 것은 명약관화다.

산을 내려올 때는 등을 떼밀며 재촉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다리 힘도 빠지고 길도 오를 때보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간단없는 추진이 필요한 시기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새롭고 강한 그 어떤 제도와 방법을 찾기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또 유지하는 데 힘을 모을 시기다. 그래야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줄고, 그래야만 코로나 상황을 포함 지난 4년 동안 어렵사리 꾸려온 경제를 상향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가장 큰 에너지원은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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