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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호 작가 |
이 걸개그림은 1987년 8월 광주YWCA에서 거행된 해방 42주년 기념전에서 선보인 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장본인은 전남 신안 신의도 출신 전정호 작가(61)다. 그를 지난 4일 오후 신안동 작업실에서 만나 미술 입문과 민중미술운동에 관한 입장, 그리고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두루 들어봤다. 우선 벽에 부착돼 있는 판화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하의3도 7.7항쟁도’ 연작으로 내년 5·18항쟁 기간 때 선보일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전 작가의 프로필에서 국가보안법만 뽑아서 보면 그는 대단히 투쟁적 인물로 비친다. 그러나 그의 유년 시절은 보통 화가들과 다를 바 없는 성장의 과정을 거쳤다. 오히려 미술을 하기에는 여건이 그닥 좋은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앞서 미술을 한 사람이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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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호 작가 |
그러다 목포 홍일고에 진학한 후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미술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미술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연마했다. 모두 사비로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어려움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원래 1979학번으로 입학해야 하지만 1982년 뒤늦게 조선대 미술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작가가 대학에 진학했을 무렵 한국사회는 5·18민중항쟁이 일어난 후인데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은 군부독재의 시대여서 대학가에서는 매일 시위가 벌어졌다. 혼돈의 시대 속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기 위한 고심을 거듭한다. 입학 후 군 복무에 나섰고, 군을 제대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가 다시 세상과 마주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복학해 학교에 들어와 보니 농촌 문제나 정치 문제가 다 걸려 있더군요. 그래서 제 자신에게 물었죠. 순수하게 그림을 그린다는 게 온당한 것이냐고. 제 스스로 변화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호와 함께 대학생으로 새로운 미술운동 관점에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조선대 미술동아리를 결성하게 됐고, 사회과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민중미술에 눈을 뜬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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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호 작 ‘하의3도 판화_고문’ |
5·18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래서 중점적으로, 본격적으로 관련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판화를 통해 정치와 농촌, 사회 변혁을 묘사해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 한다. 이런 것을 추구하는데 가장 걸맞는 장르로 판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판화작업에 몰입한다. 한때 민중미술을 새로운 변혁 양식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치적 대변으로 치부해버리는 현실을 목도한다. 이에 대해 그는 해외에서는 한국민중미술을 현대 새로운 양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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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호 작 ‘하의3도 판화_오림리 학살3’ |
작가는 미술운동이 이런 시대 흐름에 착각해 경도되면서 자연주의로 돌아가버린 우를 잊지 않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상호 등 몇몇을 빼면 그 내외면이 언급되기도 힘들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그림을 왜 그리는가’ 기본을 다시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기본을 생각할 때 민중미술의 복원을 위한 대안이 도출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듯하다.
“‘그림을 왜 하냐’, ‘미술운동을 왜 하냐’라고 하는 논점은 평화와 행복을 저해하고, 위협을 받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때는 저항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치적 문제로 저항할 근거는 없죠. 현재 젊은 작가들은 생명과 평화라고 하는 매개로 새로운 미술운동을 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고, 갈수록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요즘 신세대들이 표현하고 관심있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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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호 작가 작업 모습 |
요즘 연안환경 미술행동을 강조하고 있는 작가는 ‘생명평화 미술행동’의 올 1년 순회 전시를 연 뒤 구상 중인 신안에서의 종합결과보고전이나 내년 상반기 중 DMZ 답사 후 분단된 남북문제를 다룰 미술행동과 전시 등에 참가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화석(화력)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울산 노동기념관에서 오는 7월10일 진행될 미술행동 퍼포먼스와 그 다음날인 11일 전시 오픈식에 참여하며, 고래로 유명한 장생포에서 고래보호운동을 펼친다. 추후 국내 어업의 전진기지 중 한 곳인 흑산도에서 바다살리기 운동에도 동참할 복안이다.
그는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이는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젊은 세대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 때문으로 풀이됐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작업에 대해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화단에서 전정호 하면 미술운동에 헌신한 작가로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죠. 많은 작업들을 하고는 싶어요. 조선시대에도 인권과 평화운동이 있었던 것처럼 역사는 투쟁과 변혁의 연속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대사회 역시 인권운동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문헌에는 있는데 그림으로는 없어요. 그래서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연작으로 그리는 작업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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