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쓴 양림 사람들 무대언어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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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기적 쓴 양림 사람들 무대언어로 기록"

예술인플러스(광주시립극단 ‘양림’ 쓴 이정아 작가)
20년 전 신학공부로 연 맺은 후 연구 작업 지속
인물들 삶 주목·다형 김현승 시 작품 극에 녹여
"광주 정신과 맞 닿아있어"…8월30일 쇼케이스

이정아 작가는 “죽음의 터를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킨 양림의 사람들을 무대언어로 기록하고자 했다. 버려진 자들을 구원자로 세워온 양림을 기억하고, 또 이 또한 ‘광주 정신’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양림이 곧 생명이라 했다. 또 올곧은 호남 정신의 뿌리라고 봤다. 그리 말하는 목소리엔 단단한 확신이 서렸고, 누구보다 양림을 사랑하는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장사를 지내던 ‘풍장터’이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생을 잇던 곳. 피어남 보다는 사그라짐에 가까웠던 양림. 그는 죽음의 터를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킨 민초들의 삶, 무명한 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온 생으로서 기적을 쓴 양림의 사람들. 이정아 작가는 역사 속 주인공들을 소환한다.

이정아 작가는 지난해 광주시립극단이 진행한 ‘창작 희곡 공모’에 작품 ‘양림’이 선정된 첫 번째 주인공이다. 광주의 이야기를 무대화, 레퍼토리 공연으로 제작하기 위한 공모에 ‘외지인’인 서울 출신 이 작가의 작품이 꼽힌 것이다. 비록 지역의 경계로는 외지인 일 수 있겠으나, 그는 양림과 꽤 연이 깊다. 1999년 처음 양림이란 곳을 알았고, 그로부터 4년 후엔 광주에 내려와 동네를 깊숙하게 둘러봤다.

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텍스트가 아니라, 실제로 밟아본 양림은 추레했어요. 여기 저기 건축물들이 날 것 그대로 서 있었고, 묘소들도 정비돼 있지 않았죠. 지금은 양림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도 여럿 문을 열었고, 관광 코스로 둘러볼 수 있게끔 잘 조성이 돼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 그 모습이 더 양림 같았어요. 가슴 뭉클한 곳도 있었고요. 그렇게 연을 맺은 양림은 저에게 늘 연구 과제이자 주제였고, 작가로서 끝없이 영감을 주는 귀한 공간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양림 인물들의 삶에 관심을 뒀다. 김현승 시인, 오방 최흥종 목사, 조아라 선생 등 양림에서 나거나 활동했던 사람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느 작은 지방으로 건너온 유진벨, 서서평 선교사들의 삶까지. 이 작가는 이들 삶이 존귀한 생명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도대체 이곳엔 어떤 힘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답을 좇다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논문을 준비했다. 그런데 논문으로 쓰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을까 싶어, 곁눈질을 한 게 문학 장르 ‘희곡’에 가 닿았다.

“국민대에서 진행하는 신진스토리작가육성 지원 사업에 공모를 했는데, 덜컥 선정이 됐습니다. 역사적인 소재로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었죠. 이곳에서 먼저 양림의 인물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다룬 연극 ‘서평부인’을 올려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후, 이보다 더 큰 갈래의 이야기 ‘양림’을 써보자고 감히 생각하게 된 것이죠.”

연극 ‘양림’은 1904년 선교사들이 양림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을 치렀던 ‘풍장터’이자, 가장 천대받던 나환자들이 살던 죽음의 땅엔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난다.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교회가 지어지면서 생명의 에너지가 그 세를 넓혀간다. 무엇보다 이 작가는 이 기적의 중심엔 가장 천대받던 나환자들, 걸인들, 또 민초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소위 크리스천이란 교회 다니는 이들을 이르는 게 아닙니다. 예수의 삶을 따르는 자들이 진짜 기독교인이죠. 저는 그것을 양림에서 봤습니다. 어쩌다 한 분이 아니라 100여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계층이,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적인 역할을 해내는 것을 말예요. 이름없이 살다간 분들을 기리며 ‘양림’을 썼습니다.”

작품은 양림의 인물들 중 다형 김현승 시인의 삶을 중심으로 풀어진다. 김 시인의 작품이, 그가 온 생으로 겪은 시대와 어떻게 일맥상통하는지, 시로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눈물’, ‘가을의 기도’ 등 그의 대표작들이 무대언어로 어떻게 승화되는지 보는 게 이번 연극의 관전 포인트다.

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김현승 시인은 윤동주 시인처럼 낭만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인은 아닙니다. 허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시대적인지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시인은 1922년 즈음부터 1960년까지 양림의 모든 일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게 그 분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지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김 시인의 가족 분들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이번 작품에 많이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무대예술로서 연극의 힘을 믿는다. 논문보다 논리정연할 수 없고, 책보다 더 팩트에 가까울 순 없겠으나 연극만이 가지는 특별한 판타지가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그가 앞서 신진스토리작가로 선정돼 올렸던 연극 ‘서평부인’ 쇼케이스 무대에서 몸소 체험했다. 서서평이란 인물에 대해 전혀 배경지식이 없다던 관객들마저 ‘극’이란 서사에 마음이 동하면서 울고 웃는 모습에서 연극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서서평과 관련해 아는 게 많아질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지죠.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정보들은 책으로 접하면 돼요. 연극은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하는 것, 그 역할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관객에게 주어진 해석의 자유, ‘나의 눈’으로 서서평을 새로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돼주죠.”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쇼케이스로 올린 ‘서평부인’을 양림에서 초연하는 것이다. ‘서평부인’은 당시 대학로 연극계 관계자들이 “당장 대학로에 올려도 좋을 작품”이라고 입을 모아 호평했는데, 공간 규모에 맞게 맞춤형으로 펼쳐낼 수 있도록 제작된 게 특징이다.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기록될 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서평 선생의 일생을 양림동에서 풀어내는 일은 굉장한 상징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그는 앞으로도 양림이 낳은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작정이다. 양림의 영향을 받은 각 분야 인물들의 지형도, 쉽게 말해 인물사전을 집필하고 있다. 이 같은 작업에서 그는 양림이 가진 힘을 발견했다. 그것은 광주정신으로 발현된 ‘세계시민 의식’이다.

“광주의 외곽 동네인 양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들은 이미 세계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5·18민주화운동까지. 시대적인 어려움 속에서 양림의 인물들은 이를 비단 지역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어요. 크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렇게 살게끔 추동했던 그 힘을 좇아, 공부하고 또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결과물은 먼저 8월30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낭독 공연 형식의 쇼케이스로 첫 선을 보인다. 일반 관객에게 공개되는 공연은 아니고, 극단과 연극계 관계자들이 ‘양림’의 레퍼토리 작품화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인큐베이팅 된 작품은 내년 광주 시민들을 만나게 될 계획이다. 죽음의 땅이 어떻게 생명이 피어나는 곳으로 바뀔 수 있었는지. 그 기적 같은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공개된다.

“20여 년 전 신학과 선교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양림은, 지금껏 저의 빛이었습니다. 버려진 자들을 구원자로 세워온 양림을 기억하고, 이 또한 ‘광주 정신’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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