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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작가는 “죽음의 터를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킨 양림의 사람들을 무대언어로 기록하고자 했다. 버려진 자들을 구원자로 세워온 양림을 기억하고, 또 이 또한 ‘광주 정신’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
이정아 작가는 지난해 광주시립극단이 진행한 ‘창작 희곡 공모’에 작품 ‘양림’이 선정된 첫 번째 주인공이다. 광주의 이야기를 무대화, 레퍼토리 공연으로 제작하기 위한 공모에 ‘외지인’인 서울 출신 이 작가의 작품이 꼽힌 것이다. 비록 지역의 경계로는 외지인 일 수 있겠으나, 그는 양림과 꽤 연이 깊다. 1999년 처음 양림이란 곳을 알았고, 그로부터 4년 후엔 광주에 내려와 동네를 깊숙하게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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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
처음에 그는 양림 인물들의 삶에 관심을 뒀다. 김현승 시인, 오방 최흥종 목사, 조아라 선생 등 양림에서 나거나 활동했던 사람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느 작은 지방으로 건너온 유진벨, 서서평 선교사들의 삶까지. 이 작가는 이들 삶이 존귀한 생명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도대체 이곳엔 어떤 힘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답을 좇다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논문을 준비했다. 그런데 논문으로 쓰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을까 싶어, 곁눈질을 한 게 문학 장르 ‘희곡’에 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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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양림’은 1904년 선교사들이 양림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을 치렀던 ‘풍장터’이자, 가장 천대받던 나환자들이 살던 죽음의 땅엔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난다.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교회가 지어지면서 생명의 에너지가 그 세를 넓혀간다. 무엇보다 이 작가는 이 기적의 중심엔 가장 천대받던 나환자들, 걸인들, 또 민초들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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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
작품은 양림의 인물들 중 다형 김현승 시인의 삶을 중심으로 풀어진다. 김 시인의 작품이, 그가 온 생으로 겪은 시대와 어떻게 일맥상통하는지, 시로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눈물’, ‘가을의 기도’ 등 그의 대표작들이 무대언어로 어떻게 승화되는지 보는 게 이번 연극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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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
그는 무대예술로서 연극의 힘을 믿는다. 논문보다 논리정연할 수 없고, 책보다 더 팩트에 가까울 순 없겠으나 연극만이 가지는 특별한 판타지가 있다는 믿음이다. 이는 그가 앞서 신진스토리작가로 선정돼 올렸던 연극 ‘서평부인’ 쇼케이스 무대에서 몸소 체험했다. 서서평이란 인물에 대해 전혀 배경지식이 없다던 관객들마저 ‘극’이란 서사에 마음이 동하면서 울고 웃는 모습에서 연극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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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쇼케이스로 올린 ‘서평부인’을 양림에서 초연하는 것이다. ‘서평부인’은 당시 대학로 연극계 관계자들이 “당장 대학로에 올려도 좋을 작품”이라고 입을 모아 호평했는데, 공간 규모에 맞게 맞춤형으로 펼쳐낼 수 있도록 제작된 게 특징이다.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기록될 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서평 선생의 일생을 양림동에서 풀어내는 일은 굉장한 상징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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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희곡 작품으로 선보인 ‘서평부인’, 연극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담았다. |
“광주의 외곽 동네인 양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들은 이미 세계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5·18민주화운동까지. 시대적인 어려움 속에서 양림의 인물들은 이를 비단 지역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어요. 크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렇게 살게끔 추동했던 그 힘을 좇아, 공부하고 또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결과물은 먼저 8월30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낭독 공연 형식의 쇼케이스로 첫 선을 보인다. 일반 관객에게 공개되는 공연은 아니고, 극단과 연극계 관계자들이 ‘양림’의 레퍼토리 작품화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인큐베이팅 된 작품은 내년 광주 시민들을 만나게 될 계획이다. 죽음의 땅이 어떻게 생명이 피어나는 곳으로 바뀔 수 있었는지. 그 기적 같은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공개된다.
“20여 년 전 신학과 선교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양림은, 지금껏 저의 빛이었습니다. 버려진 자들을 구원자로 세워온 양림을 기억하고, 이 또한 ‘광주 정신’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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