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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경고

정현아 경제부장

[데스크칼럼] 중국에 요즘 골치 아픈 일이 하나 추가됐다고 한다. 국방과 외교 등 가시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 내부적인, 어찌 보면 사회 근간을 위협하는 풍조 때문이다. 저욕망 세대 ‘탕핑족’ 얘기다. ‘몸을 평평하게 눕는다’, 즉 반듯이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봄 중국 포털 게시판에 ‘탕핑이 바로 정의다’라는 글이 오르면서 중국 청년들의 사조가 관심을 끌게됐다. 20대의 한 청년은 이 글에서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매달 200위안으로 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하루 두 끼만 먹고 낚시나 산책 등 돈이 안 드는 여가 활동만 하면서 돈이 떨어지면 가벼운 아르바이트로 버텨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수년 동안 996하면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간 근무) 열심히 일을 했지만 사회시스템과 자본가의 노예생활로 결국 병밖에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 대해 중국 젊은이들은 “내가 누우면 자본이 절대 나를 착취할 수 없다”, “탕핑은 중국 젊은이들의 비폭력 비협조 운동이다”며 동조했고, 급기야 족(族)이라는 이름을 얻기에 이르렀다. 중국 선전(심천)은 노동자가 연봉을 43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고, 베이징은 41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취업과 집값 등을 이유로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 등을 포기한 이른바 한국의 ‘3포’나 ‘5포 세대’보다 격한 표현이다.

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등 자동차회사의 노동조합에 더해 조선과 중공업, 석유화학, 철강 등 생산직 비율이 높은 대기업 노조는 수년 전부터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공론화에 나설 태세다. 내연기관을 얹은 자동차에 비해 전기차는 부품이 30%이상 적게 들어간다. 전기차가 본격 생산되면 생산인력은 40%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을 줄여야하는 것이 당연하고, 각 회사의 노조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노조가 인력감축을 넘어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바로 정년과 연금 수급시기의 불일치 또는 월급 공백기간 때문이다. 정년은 60세에 하지만 연금은 65세부터 받을 수 있다. 정년 후 5년 동안을 급여 없이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다.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 등으로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던 세대로서는 더 돈을 벌어야하는 것이 숙명이다.

이들 대기업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직원들, 이른바 MZ세대들은 또 불만이다. 켜켜이 쌓인 선배와 고령자들 때문에 평생 승진의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임금 인상의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0년 넘게 일하셨으니 정년을 받아들이고 제발 물러나주시라”고 아우성이다. 그들의 외침과 절박함 또한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급기야 정부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사람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제도’의 지급요건과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지난해 도입된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은 우선지원대상기업·중견기업이 정년을 연장·폐지하거나 정년 후 노동자를 재고용하면 노동자 1인당 월 30만원을 최대 2년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부는 규정을 개정해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에 1년 이상 정년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요건을 삭제했다. 또 재고용 기한을 기존 3개월 이내에서 6개월로 늘렸다.

정년연장이라는 사회이슈는 워낙 폭발력이 큰 사안이라 임기가 불과 5개월 남짓 남은 현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치켜들기는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구성되면 아마도 못본 척, 못들은 척 비켜가고 미뤄뒀던 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올듯하다.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보려는 기성세대와 이제 자리 좀 비워달라는 MZ세대가 논의의 중심에 서고, 싸움은 치열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정년연장 이슈를 접하면서 한편 희망을 느낀다. “우리 자리를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내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든든하다. 집값과 노동착취 등을 핑계로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중국의 청년들보다 우리의 자녀들이 더 건강해 뵌다. 사회와 체제에 실망하고 기가 꺾여 “격하게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말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까지도 정년연장 논의에 모셔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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