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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내향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 말로는 “까불까불하고, 모난 성격”이라 한다. 남들 눈치 안 보고, 하고픈 것은 꼭 해야 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학창시절에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특별활동 시간에 하나를 고르라는데, 딱히 끌리는 게 없어 선택한 게 연극반이었다. 송씨는 입단한 지 한 달 만에 탈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뭔 애들 장난도 아니고, 유치해서”였다. 내내 연극인의 길을 걸어온 그이지만, 이들의 첫 만남은 영 아름답지는 못했던 셈이다.
그러다 운명의 날, 뮤지컬 공연을 본 후 송씨의 인생에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무대예술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된 것. 그 길로 극단 ‘청춘’을 찾아갔고, 입단해 연극인으로서 첫 발을 뗐다.
“극단 활동을 하던 중, 한 동료가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겁니다. 저는 그때 연극영화과란 전공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그럼 나도 해볼까 싶어 서울예술대학교(당시 서울예술전문대학)원서를 냈는데 용케 합격했죠. 하지만 대학로 공연을 하면서도, ‘연극이란 뭘까’ 진로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질순 없었어요. 그러다 운명적인 작품 아서밀러의 ‘시련’을 만나면서 연극에 대한 생각은 물론, 삶의 가치관마저 바꾸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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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적’ 공연 모습. |
“작품에는 정의와 진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연극이 정말 좋구나 그때 느꼈어요. 내가 감히 살아보지 못한 생을, 간접적으로나마 살게 해주니까요. 그러다 오롯이 10년간 한 우물을 파보자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간 최선을 다해 무대에 올랐고, 많은 작품들로 세상과 소통했죠. 그때의 결심이 쭉 이어온 덕입니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활동하다, 2011년에는 완전히 광주로 내려와 극단 ‘사람사이’를 창단했다. 이유를 묻자 “굳은 철학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셰프처럼, 나만의 색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공을 들인 게 ‘사람사이’가 꾸준히 올려 온 세계명작시리즈다. ‘노부인의 방문’(뒤렌마트), ‘리어왕’·‘오셀로’(셰익스피어), ‘민중의 적’(헨리 입센)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그중 ‘노부인의 방문’이 막을 내린 뒤 송씨는 무대에서 눈물을 흘렸다. 고전 명작이 자신의 해석을 거쳐, 작품화되는 것이 꽤 감격스러워서였다. 러닝타임이 2시간 정도였는데, 관객들의 평은 “1시간도 채 안 되는 것 같았다”였다. 그만큼 몰입감이 훌륭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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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인의 방문’ 공연 후 단원들과 함께한 송 대표(맨 오른쪽). |
송씨가 꼽는 연극의 매력은 ‘살아있음’이다. 수억이 투자된 영화나 드라마라도 따라갈 수 없는 게 바로 현재성이다. 쉽게 말해 다음은 없다는 의미다. 지금, 이 순간 쏟아내는 게 전부이기에 후회 없는 무대를 선보이는 게 목표다.
“청년 시절엔 뭣 모르고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시킨 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표현하는 방식이죠. 이제 한 30년 해보니, 등장인물을 저의 생각대로 형상화시키는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맡은 인물을 100% 믿어버리니까요. 이전엔 인물을 분석하는 데 있어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제 자아와 그이를 일치시키려고 합니다. 무당이 접신했다고 하죠. 그와 비슷한 경험일 것 같아요.”
실제 그는 ‘오셀로’ 극 중 희대의 악당 ‘이아고’를 연기한 후, 꽤 오랜 기간 그 인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아고’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 대사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꼽힌다. 밤낮없이 대사를 외고, 그 인물이 돼 살았다 하니, 수긍이 간다. 송씨는 “다른 작품들에선 2~3일이면 일상 회복이 됐는데, 오셀로 이후엔 한 달 가까이를 붕 뜬 기분으로 살았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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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적’ 공연 모습. |
그의 인생에서 연극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송씨는 종교와 같다고 답한다. 무교인 그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나 성당을 가듯 삶의 방향성을 찾는 곳이란 설명이다.
“오래 연극을 하다 보니,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라기보다는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이를테면, 무대 위에서 정의로운 인물로 분해 ‘한 생’을 살다 보면 현실에 와서도 어느 정도의 관성이 생깁니다. 그것은 회개일 수 있고, 삶을 조금이나마 옳게 끌고 가려고 하는 의지가 될 수도 있죠.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요. 무대에 오르는 행위가 이처럼 내 삶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돼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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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적’ 공연 모습. |
“연기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을 무료로 교습하고, 함께 작품 공부도 하는 아카데미를 꾸리는 게 꿈입니다. 3년 코스로, 함께 살 부대끼며 같이 먹고 자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죠. 학교 한편엔 땅을 일궈 농사도 조금 짓고요. 그곳 수료생들은 사회에 나가 연기활동을 하며 벌인 소득의 일정 부분을 또 아카데미를 위해 기부하는 방식은 어떨까 싶어요. 꿈을 위한 선순환이 자리 잡으면 좋겠죠. 평생 좋아하는 연극 곁에서 재미있게,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네요.”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박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