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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Kingmaker)는 말 그대로 ‘왕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한 나라가 세워지고 새로운 권력자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통칭한다.우리말로는 ‘대권인도자’, ‘핵심조력자’로 불린다.
킹메이커라 불릴 수 있는 인물들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시작은 15세기 영국의 귀족 리처드 네빌로 보고 있다.
그는 1455년부터 30년 동안 영국의 왕권을 두고 치러진 장미전쟁에서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를 즉위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그는 막대한 재산과 기사 등 대권을 잡을 만한 힘은 있었지만 왕위 계승서열 등에 밀려서 왕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네빌은 자신이 속한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를 왕으로 옹립하고 실권을 행사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좋지 않았다.
왕이 된 후 자신과 불화를 겪는 에드워드 4세를 쫓아내고 헨리 6세를 다시 왕으로 복귀시켰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에 반발한 에드워드 4세측과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우리나라에도 ‘킹메이커’는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로 하여금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열게 한 정도전, 조카인 단종의 보좌세력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주도하며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린 한명회가 유명하다.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다. 그는 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해 박정희,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이른바 ‘DJP 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각각 만들었다. 고 김윤환 전 의원도 역시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을 당선으로 이끈 ‘대권 조력자’로 꼽힌다.
#2.
현대에는 최상위 권력자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핵심참모나 전략가도 포함할 정도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이런 의미로는 최근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킹 메이커’의 모티브가 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의 책사였던 엄창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평생 2만권의 책을 읽었고, 연설문도 직접 쓸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던 DJ였지만 그의 말은 군말 없이 들었을 정도로 선거의 귀재였다고 한다.
엄창록은 국회의원 선거에 3번 낙방한 DJ를 1961년 치러진 강원도 인제 보궐 선거에서 만나 첫 당선시켰고 1963년 같은 지역구 총선에서 재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67년 치러진 총선에서 보인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정적으로 성장한 DJ를 떨어 뜨리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DJ가 출마한 목포지역구를 특별지역구로 정하고 육군 소장 출신 공화당 후보 김병삼을 공천하고 정부와 여당인 공화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온갖 공작정치를 자행했다. 박 전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동안 두번이나 목포를 방문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며 DJ낙마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엄창록은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발한 전략으로 되받아쳤다.
여당 후보 이름으로 고무신을 선물로 돌린 뒤 다음 날 잘못 돌렸다고 뺏어간다 든가, 여당 선거운동원인 척하면서 표를 달라고 봉투를 돌렸는데 그 안에는 10원 , 5원 등 기분 나쁜 금액이 들어 있다든지 등등.불·탈법 선거운동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제대로 먹혀 들어갔고 결국 DJ는 목포에서 국회의원 3선에 당선됐다. 엄창록은 이 선거에서 점조직과 피켓을 이용하는 선거운동을 최초로 도입하기까지 했다.
3선 국회의원이 된 DJ는 신민당 대통령 경선에서도 역시 그의 도움으로 당시 당선이 유력했던 김영삼 후보를 꺾고 대통령 후보가 돼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향토예비군제 폐지, 대중경제론 등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공약을 내세우며 DJ의 곁을 지켰던 그는 선거 10일전 중앙정보부의 협박과 회유에 못이겨 박 전 대통령의 편이 됐다.
중앙정보부에 특별채용된 그는 대선때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DJ 진영을 교란시키는 데 성공해 박정희가 제7대 대통령이 되는 데 주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
20대 대통령선거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유력후보인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후보와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한 표 한표가 아쉬운 이들에게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대선의 향방을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이끌 ‘킹메이커’가 무엇보다 절실해졌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면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대선, 어느 누가 등장해 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변수가 될지 관심사다.
이래저래 ‘킹메이커’의 시간이 도래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