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융복합과 박덕은의 추상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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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예술의 융복합과 박덕은의 추상미술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문화산책] 오늘날 예술의 탈경계화, 또는 예술의 융복합이 시도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문학인은 문학에만 천착하고, 미술가는 미술에만 집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장르간의 소통 단절뿐만 아니라 이해가 부족했다. 문학 안에서도 시인은 소설을 읽지 않고 소설가는 시를 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겨우 전통적인 문학의 소통방식인 시와 음악의 융합을 이룬 시낭송, 시와 미술의 결합 형식을 띤 시화전 등이 문학 애호가들에게 지루하게 유통되어왔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른바 ‘디카시’라는 것이 출현하여 사진과 시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되고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유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시화를 새롭게 해석한 그림시집을 펴낸 시인도 나타났다. 박덕은이 그 주인공이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5행 이내의 짧은 시를 덧붙여 시와 그림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림이 시의 보조수단이 아닌 시적 요소로 작용하는 새로운 시를 출현시켰다. 이처럼 벽을 허물고 이질적인 장르가 각기 다른 기호로써의 역할을 하는 예술의 발현은 그림, 또는 시의 영역과 이미지의 영토를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명백하다.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섭렵한 박덕은은 사진예술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자신의 예술 영역을 넓히기 시작하였다. 근래에는 본격적으로 순수미술에 뛰어들어, 최근 3~4년 동안 불꽃 틔우듯 1000여점이 넘는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마치 휘발유와 같은 예술 에너지를 연소시키는 것이 광기처럼 느껴진다.

필자는 근래에 그가 거둔 미술적 성취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의 미술을 작동하게 하는 원심축이자 오랫동안 모색해온 ‘그리움’, 혹은 ‘외로움’이라거나 ‘사랑’이라는 관념을 장르가 달라도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품 세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에서 밝혔듯 박덕은의 문학세계는 외로움, 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상상력을 통해 줄기차게 발현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문학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 외로움, 그리움, 사랑의 감정이 미술에서는 추상미술로써 새롭게 거듭나고 있음에 주목한다.

박덕은의 추상미술은 서정적 추상 세계와 순수 추상 세계로 대별된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순수 추상 세계에 대한 그의 놀라운 상상력이다. 이것은 순전히 그가 일군 문학세계를 미술에서 더욱 심화시키고 있음을 잘 안다. 색채 이미지를 통한 추상, 한국적 정서를 투사한 추상, 기하학적 이미지의 추상에서 그의 천재적인,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장차 그의 추상미술이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필자의 관심을 유독 끄는 것은 우리 문화예술의 원형으로 인식하는 신석기 시대의 빛살무늬(기존의 빗살무늬[櫛文土器]가 아님) 토기에서 찾을 수 있다. 빛살무늬 토기를 위에서 바라보면 주둥이가 둥그런 태양의 모습이고 토기에 햇살처럼 그어진 직선의 무늬가 빛을 발하는 태양의 형상이다. 박덕은 미술의 일면은 빛[光]의 광휘를 독특한 추상미술로 발전시키고 있는 점이다(빛살무늬 그 자체도 추상이다). 물론 그의 미술은 타고난 색채감각에 힘입은 바가 크다. 과감한 색채나 기하학적 화면구성 등의 총체성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그리움의 시원을 추상미술로써 재해석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하늘의 자손이자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지상의 웅녀와 결합하는 이른바 천손(天孫), 즉 하늘의 자손이라는 믿음이 빛살무늬로 나타난 것을 그의 추상미술로 그려내고 있다.

박덕은의 회화에서 원(圓)이 등장하고 화면을 분할하고 있는 수많은 직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직선들을 필자는 빛살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직선들이 이루고 있는 기하학적인 형상들과 그 위를 날고 있는 학(鶴)의 이미지는 우리의 전통에서 고고함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원은 불교적인 관념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결함과 결핍이 없는 완벽함, 또는 무탈을 상징함을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그의 미술은 우리 민족 주체 의식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추상미술의 일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외로움’, ‘그리움’ 또는 더 큰 의미의 ‘사랑’은 그의 문학적 상상력으로부터 전이된 것이다. 즉 박덕은 미술의 원천은 그가 일생을 통해 일구어온 문학적 상상력이 원천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박덕은 추상미술 세계의 일면은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표현방식에서 이질적이지만 장르간의 벽을 깨고 새로운 예술이 발현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자신의 예술 장르만을 바라보는 고집을 버리고 타 장르간의 소통을 통해 우리 예술의 영토를 넓히는 것이 또 다른 예술세계를 여는 것임을 박덕은 예술의 융복합, 또는 예술의 탈경계가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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