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징게국과 메밀묵과 꼬막정식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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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무이징게국과 메밀묵과 꼬막정식과 그리고

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문화산책] 백석 시인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시인이다. ‘여우난곬족’이라는 그의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우가 나는’ 깊은 산골이다. 그 산골의 명절에 친척들이 모였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입에 침이 고인다. 어린 시절 시의 화자는 명절날 큰집에서 친척들과 만나 먹은 음식과 새벽까지 함께 한 놀이 등을 통해 가족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메밀국수, 청배, 가자미, 수박씨, 무이징게국, 떡국은 어린 시절 시인의 존재에 배인 음식이었다. 백석 시인이 음식의 맛과 향에서 담아내고 싶었던 세계는 고향의 공동체가 지닌 정신과 힘이었다.

어떤 이의 죽음은 당장 믿기 힘들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 분이 신경림 시인이다. 충청북도 청주 출신인 시인이 어느날 노동운동으로 지명수배 중이던 청년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고 쓴 기념시가 ‘가난한 사랑 노래’다.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이 시에는 두 가지 맛이 등장하는데 어머니가 수배자인 아들을 기다리면서 고향에서 쳐다보는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아 있는 홍시와, 골목길 새벽을 울리던 메밀묵의 맛이다.

허기, 가난, 어머니, 골목길, 호각 소리로 대변되는 시대의 어둠,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노동 운동,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어쩔 수 없는 그 사랑과 울음 등이 처연하게 제시된 시대적 상황이다. 가난할 때 사랑은 더 크고 강한 힘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언하고 시대를 증언한다.

평안도를 거쳐 충청을 거쳐 내려와 남도에서 음식 시를 빼면 시체겠지!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고양이 꼬막 보듯이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퉁’이라는 단어는 ‘퉁명스러운 핀잔’이라는 뜻이다. 고양이가 젯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것처럼 가지고 논다. 그렇게 꼬막을 먹을 줄 모르는 시인이 아니라, 밥 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꼬막 똥구멍을 밀어 확 비틀어서 먹을 줄 아는 곧 남도의 맛을 시식할 줄 아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시구가 이어서 나온다.

고흥 출신의 송수권 시인의 시다. 남도 사람들의 삶은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진짜 곰삭은 맛이 배인 삶’이다. 그래서 공깃돌놀이 하듯이 삶의 겉만 핥지 말고, 꼬막을 숟가락으로 확 비틀어서 진짜 남도 삶의 곰삭은 맛을 제대로 맛보고 시를 쓰라는 ‘퉁’을 주는 시다.

음식문화 전성 시대다. 요리사보다는 쉐프라는 단어가 더 감각적이다. 유학한 쉐프들이 유튜브를 찍어 ‘좋아요’ 갈채를 받는 시대다. 요리 크리에이터들이 예능 프로 곳곳에 경쟁적으로 출연하고,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음식 산업과 축제가 대세가 됐고, 음식 휴먼 다큐멘터리나 영화, 인터뷰, 강의 등의 전성 시대가 됐다. 음식은 문화이자 거대 산업이 되었다.

맛과 멋의 고장 남도는 김치, 젓갈로 대표되는 발효 음식 문화의 대표 고장이다. 한번도 남도의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퉁’을 주는 손님을 보지 못했다. 음식은 남도의 정체성이다. 맛과 멋은 남도의 경쟁력이다. 축제와 산업과 문화로 승화시켜나가고 있다.

남도의 맛이 ‘개미’고 ‘개미’가 깃든 ‘그늘이 있는 삶’이 남도의 삶의 정수라고 말한 송수권 시인의 시에 이런 구절도 있다. ‘문둥아 내 문둥아 니 참말로 왔구마/그 말 듣기 좋아/그 말 너무 서러워/아 가만히 불러보는 어머니/솥단지 안에 내 밥그릇 국그릇/아직 식지 않고/처마 끝 어둠 속에 등불을 고이시는 손/그 손 끝에 나의 신(神)은 숨쉬고’

우리 사회의 문제는 나를 키웠던 음식, 그 음식을 만드는 데 이바지한 어머니와 고향의 자연, 공동체에 대한 은혜와 감사를 잊어버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들은 밥의 공동체를 회복하면서 치유될 수 있다고 감히 믿는다.

어머니가 귀가할 남편을 위해 아랫목에 밥을 따뜻하게 간직해 두었던 추억이 있는 사람들. 자식들을 위해 부엌 어둠 속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손하는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에게 음식은 어머니이자, 그 어머니는 우리의 신(神)이고, 우리는 그 신의 맛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배고프던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가난한 밥상과 그 밥상에 모여 오손도손 먹던 밥 향기가 한없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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