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리…응원과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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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나의 자리…응원과 동참

박성언 음악감독

박성언 음악감독
[문화산책]얼마 전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 요즘은 휴대전화만 있어도 인터넷 뱅킹으로 거의 모든 은행 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은행에 실제로 방문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오랜만에 은행에 가니 나를 응대하는 상담 직원이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인다. 옆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은행원이 나보다 어려 보인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은행은 젊은 사람을 많이 채용했구나!

얼마 전 몇 가지 프로젝트 때문에 영상 촬영 전문업체와 만남을 가졌다.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친구들이 나보다 어려 보인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업체는 젊은이들이 많구나!

얼마 전 광주의 어느 축제 운영사무실에서 음악 관련 업무로 연락이 와서 방문했다. 8명의 청년이 나를 둘러싸고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축제는 젊은 사람을 많이 기용했구나!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 잠깐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오늘따라 공원을 노니는 어린 새들이 많다. 그리고 스치는 생각 ‘아. 내가 나를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렇다. 내가 나를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보니 모든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 시대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청년들을 키워줘야 한다. 청년들이 잘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문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문구이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의 무엇을 키워주고 어떤 길을 열어주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청년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청년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수 있지만 아직 세공되지 않은 원석의 모습이다. 80년에 태어난 나도 어느덧 청년의 시절을 넘어 중년이 되었다. 아직도 예술에 대한 열정과 영감이 넘쳐난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살지만 이제는 또 다른 다음 세대의 예술 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몇 년간 여러 프로젝트와 고민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어느 순간 위기의식을 느낀 예술 사업들도 청년들에게 예산을 쥐어주고 공간을 내어주며 열심히 해보라고 한다. 무엇을 열심히 하지? 청년들이 이것을 안다면 이미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렇다. 아이디어와 영감을 전해주고 함께해 줘야 한다. ‘잘해봐 응원할게’ 같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고 묵묵하게 그들의 현장에 가서 함께 해주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이 움직여 주는 것, 조금은 망가져 주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짧은 경험을 아주 겸손하게 공유해 주는 것, 이제는 이런 노력을 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바뀐다. 거스를 수 없는 세상의 움직임이다. 바뀌는 것에 꼭 발맞춰 나도 바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것을 비판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 시대는 바뀐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이미 예전 어르신들과는 많이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되도록 응원하고 혹여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동참해 주자. 참 어른이 되자. 말만 하는 어른이 아니고 동참해 주는 어른이 되자.

이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몇몇 청년 기획자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참 느껴지는 바가 많다. 일단 이들은 일을 참 재미있게 한다. 그에게 맡겨진 역할이 마냥 즐거운 가 보다.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이유와 명분을 따지는 나와는 다르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재미있어진 나는 한참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가끔은 나이 든 사람 흉내를 내며 폼을 잡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을 하는 모습도 너무나 예쁘다.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했던가. 선조들은 정말 대단하다. 이것을 알아내다니.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청년들이 나를 끼워주니까 참 고맙네. 그리고 혹여 이 친구들의 생각대로 현장에서 구연이 되지 않아도 절대 비난하거나 훈수 두지 말자! 다이아몬드 원석을 알아보는 장인의 눈을 갖고 활짝 열린 주머니로 응원하는 사람, 가끔 청년들의 세상에 나를 초대해 주면 열심히 준비해 가는 사람, 그리고 가끔은 청춘들에게 불어오는 거친 바람도 함께 맞아주는 사람, 그곳이 내가 꿈꿔야 할 나의 자리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청년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아파하는 세상이다. 아프지 말라는 말보다는 함께 아파 주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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