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탄생(A star is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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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스타 탄생(A star is born)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문화산책] 나는 그녀가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정기공연 작품 ‘라 트라비아타’의 전국 단위 오디션에서 주역 ‘비올렛타’로 발탁된 후에도 실은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늘 같은 패턴의 일의 반복이라 타성에 젖은 탓도 있을 테고 또 한편으로 사실 우리나라에 노래를 너무 잘하는 가수들은 속된 말로 아주 널려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날 오디션 후에 조금 특별했던 점이라면 예술감독을 포함한 심사위원들이 그녀가 지원자들중 최고 성적이긴 했지만 무명이라는 점에서 최종 선택을 하는 데는 상당히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소리가 좋은 편이고 뭔가 모르겠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어 보이니 혹시 잘하면 뜻밖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운에 맡기는 듯한 말들이 오갔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모험적 캐스팅이 성공하면 크게 잘 될 수도 있지만 망하면 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이야기였으니 이럴 경우 심사를 맡았던 전문가들의 감을 믿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쨌든 프로 오페라 세계를 기준으로 봤을 때 그녀의 외모나 이력은 평범한 편이었다. 유학 중 조그만 콩쿠르 몇 개 입상하고 그저 그런 수준의 공연에 가끔 출연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까지 전막(全幕) 오페라라고는 한번 도 해본 적이 없었고 거기다 학부는 지방대 출신이었다. 물론 나는 출신 학부를 기준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가수를 평가하는 사람은 아니다. S대 출신이 수두룩한 국내 오페라계에서 지방대 출신으로도 뛰어난 역량으로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어떤 낯선 가수에 대한 기대 수준을 예측할 때 학부의 네임 벨류가 주는 확률적인 팩트는 분명히 존재하긴 하더라는 것뿐이다.

공연을 준비하며 궁금해진 나는 가끔 연습실 분위기를 살폈다. 전막 오페라는 처음이라 자주 헤맬 거라는 예측과 달리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를 깨닫는 그녀의 ‘일취월장’하는 실력을 제작진이 인정하기 시작하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아직 신인이라 잘 다듬어진 소리는 아니지만 모든 음역에서 거침없이 뚫고 나오는 자연스러운 소리와 풍부한 감성이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기대 이상의 약진에 연출자를 포함한 제작진은 상당히 고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녀에게 숨겨져 있던 열정과 재능에다 진지한 노력 그리고 이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그야말로 놀라운 습득력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다. 연습 초기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까지도 신속히 해결이 되가면서 공연일이 가까워질수록 이 작품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히려 성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부분이 더 커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공연은 광주와 대구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예상대로 광주 공연은 평타 이상을 치면서 신선한 뉴 페이스 소프라노의 등장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공연 후 그녀는 놀랍게도 지역 관객들로부터 국내 최정상급의 솔리스트들에게 보이는 관심 이상을 받고 있었다.

대구에서의 공연은 더욱 성황리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구 오페라 극장의 음향 조건 등 광주보다 훨씬 나은 극장 컨디션도 작용을 했지만 어쨌든 관객들은 ‘신성’(新星)처럼 나타난 놀라운 신인 소프라노의 탄생에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역시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너무 신선하고 생명력 넘치는 독특한 매력의 ‘비올렛타’에 모두 매료되고 만 것이다. 공연 후 로비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 역시 예상외의 전개에 조금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 항상 어색한 표정으로 돌변하는, 한마디로 사진발이 잘 받지 않는 인간이다 보니 직업상 수많은 지휘자, 솔리스트들과의 끊임없는 만남 속에서도 내가 자발적으로 사진 속에 들어가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리셉션장으로 들어온 그녀를 보고 동료 직원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바브라스트라이샌드’가 주연했던 아주 옛날 영화 ‘스타 탄생’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나이 어린 그녀가 그 영화를 봤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또 당신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더욱 큰 무대에서 자주 보고 싶다는 덕담을 건넸다. 립 서비스가 아닌 진심이었다.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반드시 사람 보는 눈이 생기기 마련이다. 영화 ‘스타탄생’처럼 운명적으로 얻은 우연한 기회에 본인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깨닫고 세계의 스타가 되는 것이 영화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운명론자이며 신을 믿는다. 예전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본인은 알 수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인생의 로드맵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인간의 ‘운명’은 완전하게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영역이라고 믿는다. 나도 살아보니 사람이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에디슨의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보다 운칠기삼 (運七技三)이란 말을 더 믿는다.

어쨌든 그 어떤 운명적인 선택으로 전라도 ‘광주’까지 와서 오디션에 합격을 한 후 큰 무대에 데뷔하기 시작했으니 그녀의 고향이 어디 출신이든 이제 우리 지역이 배출한 빛나는 예술적 자원으로서 보호되고 응원 받았으면 한다. 그녀는 마치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아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앞으로 전 세계 무대로의 성장과 성공, 신의 축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독자들께서도 혹시 필자의 말을 믿고 ‘신성’같이 나타난 소프라노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12월 7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시립오페라단 갈라콘서트’ 공연을 오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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