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폭탄에 폐허…어디서부터 정리할지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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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물 폭탄에 폐허…어디서부터 정리할지 막막"

[전남 무안·함평 호우 피해 현장 가보니]
주택·밭 침수…경로당·마을회관 대피 밤새 ‘뜬 눈’
마을 대부분 흙탕물·쓰레기 범벅…주민 망연자실

“하늘에 구멍 난 줄 알았어요.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습니다.”

4일 오전 전남 무안군 현경면 양학리. 마을 입구부터 깊숙한 곳까지 전날 내린 비에 쓸려 온 흙들로 가득했다.

주민들은 전날 내린 290여㎜의 괴물 폭우에 젖어버린 가재도구와 가전제품 등을 마당으로 옮기고 있었고, 마을회관 한 쪽에는 흙탕물에 범벅이 된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물건을 치우던 한 주민은 ‘하늘이 야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망연자실했다.

경로당에서는 침수를 피해 대피한 10여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전날 밤의 위급한 상황에 대해 넋두리를 이어갔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일부 주민들은 침수된 밭을 돌아보며 농작물을 살폈지만 얼굴에는 허탈한 표정이 역력했다. 마을 인근 밭과 논은 대부분 빗물에 잠겨있었고, 일부 작물은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뽑혀 있었기 때문이다.

박병연 이장(58)은 전날 밤의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당시 마을을 살피고 있던 박 이장은 오후 8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굵어지자 황급히 마을 어르신들을 경로당으로 이동시켰다.

폭우가 내리더니 불과 10분 만에 자신의 허리 높이로 흙탕물이 차올랐고, 몇 분 뒤에는 가슴 높이까지 불어났다.

대피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급류에 휩쓸릴 뻔한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 일부 세대는 출입구가 물에 잠겨 담을 넘기도 했다.

박 이장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에 7년 전 돌아와 다시 정착했는데 이렇게 큰 피해는 처음 겪는다”며 “지난 폭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부랴부랴 대피한 경로당, 마을회관에도 물이 찰 수 있다는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전남 함평읍에 위치한 함평천지전통시장도 폭우 피해를 입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시장 내부는 상인들이 점포 식탁, 냉장고 등 옮겨 놓은 가게 물품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바닥은 물에 잠겨버린 과일, 채소 등이 흙탕물에 젖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인근 길목에는 인근 하천에서 흘러온 식물들이 뒤엉켜 있었다.

상인들은 너까래, 빗자루 등을 가지고 수돗물을 뿌리며 가게 내부로 들어온 흙탕물을 쓸어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장 한쪽에는 전날 차오른 물에 쓸려온 드럼통, 파티션 등 각종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물품 배달 등을 위해 가게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는 흙으로 범벅이었다.

도로에는 물에 젖은 물품을 가득 채운 1t 트럭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었다. 빗물에 잠긴 차량을 이동시키는 견인 차량들도 수시로 목격됐다.

일부 상인들은 성인 남성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에 침수된 가게 내부를 보며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주저앉기도 했다.

3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모씨는 재난안전문자를 받고 차량을 옮기려다 하마터면 고립될 뻔했던 전날을 회상했다.

이씨는 “급하게 차를 옮기고 골목으로 나왔는데 불과 2~3분 만에 발목까지 물이 차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며 “대피할 엄두가 나질 않아 중요한 물건만 몇 가지 챙겨서 상가 2층으로 급하게 이동했다”고 전했다.

이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요즘 들어 날씨가 너무 야속하다”고 토로했다.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
무안=이훈기 기자 leek2123@gwangnam.co.kr 함평=최일균 기자 6263739@gwangnam.co.kr        무안=이훈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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