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사상 초유의 헌정파괴행위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이길 포기했고, 최순실은 대통령을 막후에서 조종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대통령의 권한을 사적으로 대행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헌정을 유린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무총리, 행정부, 사법부, 국정원 등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무를 부여받은 기관들 중 어느 한 곳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권력 사유화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동참하면서 국민위에 군림했다. 게다가 거대 재벌은 수십억 씩 뇌물을 주면서 권력과 거래하며 노동자, 중소기업,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약탈했다. 또 정치권 역시 민의를 대표해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여당은 부패한 박근혜 정권 구하기에 나서는가하면 야권은 무기력하게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당당했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최순실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언론사들의 취재결과 사실이 드러나고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25일 스스로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는 곧바로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리고 성난 민심에 다시 지난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각종 불법행위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담화는 하야와 탄핵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임에도 핑계와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오만한 일방적 선언일 뿐이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대통령의 권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부당하게 권세를 누리거나 치부한 개인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순실과 같은 이는 우리 헌정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비선이니 권력실세니 하는 자들의 비리 따위와 이번 사건은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재벌회장들을 불러다놓고 돈을 주고받으며 뒷거래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상상하면 끔직하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국정운영의 매커니즘이 한 개인에 의해 농락당하고, 그 많은 장·차관들이 막 후의 권력실세라는 한 개인에게 머리를 숙이며 대통령이 한낱 장식이 되어버린 상황을 알게 된 국민들이 느끼는 자괴감, 상실감 그리고 분노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헌법을 위반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박근혜 대통령은 더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일 수 없다.
부패한 정권을 창출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현 정권에 더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관여돼 있고 정권의 관련자들이 이미 많이 드러나고 있어 다음과 같이 바라며 촉구한다.
첫째로 박근혜 대통령은 거국내각 구성을 국회에 위임하고 직무를 중단해야 한다. 현재 대통령이 국가수반으로서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직무중단과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국민과 야당이 동의하고 원하는 거국 중립내각을 즉각 수용해야 한다.
둘째 국회가 나서 국정조사와 특별 검사법을 제정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국정전반에 걸쳐 부패와 권력 사유화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현 검찰의 신뢰는 무너졌고, 청와대가 지휘하는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단순한 특별검사로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 국정전반에 걸쳐 조사하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철저히 국민적 합의가 원칙이다. 향후 권력의 농단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여야 정치적 거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들은 우리 헌법의 가치가 헌법질서 내에서 구현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진실과 정의를 원한다.
지난 토요일 30만 국민의 물결이었다. 어떤 것이 맞고 틀린지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세력이 끝가지 권력유지를 위해서 국민을 능멸한다면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참담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야 할 때이며,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