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사람 목숨이 중요치 않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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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시론]사람 목숨이 중요치 않은 사회

배호남 초당대 교수·문학박사

지난 14일 새벽, 경북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50대 조선족 남성이 35세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 남성은 숙취해소 음료를 사려다가 아르바이트 직원이 봉투값 20원을 달라고 하자 시비가 붙었고, 이후 자신의 원룸에서 흉기를 가져와 직원을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가장 위험한 직업군 중 1위가 야간 편의점 직원이라는 조사가 있다. 미국은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이며, 새벽의 편의점은 강도 범죄의 손쉬운 목표물이 된다. 생활고에 찌든 하층민이 총기를 들고 편의점에 침입해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비용 파트타임으로 고용된 가난한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을 위협하다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총기소지가 자유롭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이 야간의 편의점 직원을 위협하거나 죽이는데 꼭 총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가정집에 흔히 있는 식칼 하나면 충분하다.

한국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안전이 위험수준에 처했다는 징후는 수차례 있어 왔다. 올 10월에는 한 취객이 직원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컵라면 끓는 물을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뿌려 화상을 입힌 사건도 있었다. 편의점 범죄는 2014년에는 6600여건이었는데, 지난해에는 무려 1만1000여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중 폭력 및 강력범죄가 3500여건으로 30%에 달한다. 특히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경우 직원의 68%가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여성 직원의 경우 20%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처럼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업계의 빅3인 CU, GS25, 세븐일레븐은 아르바이트 직원의 안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유는 바로 사람 목숨보다 돈, 정확히는 이윤을 창출하는 효율성이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외주 수리업체 직원 조모씨가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사이에 끼어 사망한 사건, 연이어 올해 5월 구의역에서 똑 같이 벌어진 19세 청년 노동자의 사망사건 역시 사람 목숨보다 효율성이 더 중시돼 일어난 참사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 지하철과 철도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 건수는 9건이며 총 14명의 외주업체 직원들이 사망했다. 4년 사이에 이 정도 숫자면 단순히 현장 작업자들의 의식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대도시 지하철 뿐 아니라 한국철도공사의 KTX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해 3월 호남선 고속철도가 본궤도에 오른 후 많은 광주시민들이 KTX를 이용하고 있다. 용산에서 광주송정까지 최단시간 99분 만에 주파하며 명실상부한 일일생활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호남선 신형 KTX 열차를 타면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코레일의 민낯을 보게 된다. 언제부턴가 KTX에 입석 승객을 받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후 서울로 가는 KTX 열차 통로는 익산을 넘어서면 입석 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처음 KTX가 개통되던 2004년에는 입석이 금지됐던 걸로 기억한다.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입석 승객들이 더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코레일은 유일한 흑자 사업인 고속철도에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위험가능성을 무시했고, 언제부턴가 KTX 열차에 입석 승객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입석 승객이 늘어나 통로를 장악하자, 신형 KTX 열차에서는 스낵이나 음료를 파는 카트 서비스도 중단됐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폐지하고, 인건비는 줄이면서, 입석 승객은 늘일 수 있는, 오로지 이윤만을 뽑아내겠다는 몰염치한 처사다. 그리고 이 입석 승객들을 통제하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승무원은 단 1명밖에 없다. 지난해에 일본의 신칸센에서는 운행 중인 열차 안에서 한 남성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천만다행으로 분신을 시도한 남성과 옆에 있던 한 명의 승객 이렇게 2명만이 사망했다. 당시 열차에는 100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화재를 소화기로 진압한 사람은 신칸센의 열차 승무원이었다. 호남선 KTX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가득 들어찬 입석 승객을 제치고 단 한 명의 승무원이 화재를 진압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 이 자명한 사실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윤 창출을 위한 효율성에 희생되고 있다. 돈을 위한 효율성에 중독된 사회에서 사람 목숨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질 것이다. 이 중독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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