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초대석]정영재 광주평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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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초대석]정영재 광주평화재단 대표

"평화통일 첫 출발은 국민적 관심에서 시작"
공동체 정신 기반 19년째 남북교류협력사업 매진
민족 분열·갈등 극복 '통일 go to 100년' 열어야
北 환경 고려 농업·에너지 분야 협력 '신사업' 전개

정영재 광주평화재단 대표는 “평화통일을 이루는 첫 단계는 범 국민적 관심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국민들이 함께 할때 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최기남 기자
지난 4월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11년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의 길이 다시 정상화 됐다. 회담 이후 후속 조처로 군사, 농업,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당장 다음 달에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에 평화의 싹이 움트면서 그동안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매진해 온 정영재 광주평화재단 대표도 새로운 사업 구상과 추진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에 정영재 대표를 만나 향후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내용과 기조,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로 광주평화재단이 설립된 지 12년이 됐다. 재단의 역사와 그동안의 역할에 대해 소개해 달라.

-광주평화재단은 남북교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5년 후인 2005년 준비작업을 거쳐 이듬해 설립됐다.

최초 남북교류사업을 시작한 2000년 당시 관청과 힘을 모아 진행하던 사업이 대다수였고, 순수하게 민간영역에서 이뤄지는 부분이 지역에 없었다. 민간영역의 활발한 움직임을 이끌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재단의 명칭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얼을 대표하는 ‘아리랑’을 붙여 ‘아리랑국제평화재단’으로 명명했다. 이후 동북아 지역을 거점삼아 중국 단둥과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그곳에 살고있는 고려인, 조선족과 교류협력 및 인재육성, 장학금 지급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지금의 재단 명칭은 2008년 변경된 것이다. ‘광주’ 가 갖은 인권·평화, 공동체 정신을 재단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평화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 내고 거대한 담론과 정신적 토대를 구축하고 싶었다. 특히,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곳곳에 광주정신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실제 명칭 변경 이후 해외에서 활동하며 광주정신과 의미 등이 자연스레 전파됐고, 이는 고려인과 조선족들이 우리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발판이 됐으며, 재단에서는 한반도 평화통일 조성을 위한 사업, 평화교육사업, 봉사활동, 연구사업 등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됐다.



△최근 열린 광주평화재단 12주년 기념식 및 후원의 밤 행사에서 ‘통일 go to 백년’을 선포했다. 의미와 중점사항에 대해 설명해 달라.

-1945년 8월 15일 그토록 민족이 원했던 해방이 이뤄졌고, 그로부터 어느덧 73년의 세월이 흘렀다. 해방 후 100년이 되기 까지 이제 한 세대로 남지 않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변화의 속도가 대단히 빨라지는 현실 앞에 해방 후 100년 내에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통일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통일 go to 백년’은 해방 이후 100년 내에 통일을 이루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귀중한 미래의 발전적 전망을 놓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잃고 있다.

우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끊임없는 성찰로 민족이 앓고 있는 대립과 전쟁의 위험을 극복하고 통합의 평화공동체를 이룬다면 그 힘은 사회와 경제, 그리고 환경 모두를 향상시켜 ‘삶의 질’을 높이고 인류 문명사를 선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특히, 통일정책 추진은 정부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초당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국민들은 소수 특정인이 아닌, 누구나 분단 극복을 위한 인식전환을 위해 끊임없는 사고와 실천하려는 일상화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 속에 지혜가 모이고 또 모여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 인식과 동참의 거대한 울타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농업·에너지 분야의 새로운 대북사업 내용과 추진 계획은.

-먼저, 남북농업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남북안전농업시범단지’ 건설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북한의 농업환경을 고려, 국제적으로 검증된 농업기술을 접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클로렐라 농법·지중열 히트 펌프 시스템·무병 씨감자 보급 등 3개의 세부사업으로 구성됐다.

국내에서도 친환경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중열 히트펌프 시스템’은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한 냉난방 신기술로 다양한 열원해석을 통해 지열 및 수열 등을 활용, 난방비를 최대 70~90%까지 절감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고효율 신기술 시스템이다.

‘무병 씨감자 보급’은 현재 열악한 환경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재배기술을 제공해 식량난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단은 북한의 유기농 무농약 시범지역인 황해도 강령군을 중심으로 시범 배양을 실시하고 이후 서해·동해안지역(1차 확산), 내륙 및 서북지역(2차 확산)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 식량난과 에너지난에 허덕이는 북한에 풍력발전을 통한 에너지 자립형 마을을 추진한다. 실제 북한의 지난해 기준 1차 에너지 공급량은 9910억kWh로 남한(29만4654억kWh)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발전량 역시 남한은 5404억kWh에 이르는 반면 북한은 239kWh이다.

‘대북에너지사업단’을 주축으로 풍력 에너지를 통한 자립형 마을 구축한다.

독립형·연계형 두 종류의 풍력발전 에너지를 통해 자립형 마을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북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자본 충당 방법은.

-대북사업 진행을 위한 자금 마련 방법은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정부가 예산으로 확보한 남북교류협력기금과 기업의 후원,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이다. 먼저, 기금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 기금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속가능한 민간교류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교류활동에 대한 독립성과 제도가 필수이며, 재정확보가 관건이다. 지자체마다 조성되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는 데 부익부 빈익빈 이란 불균형적 형태의 사업 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 정부가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광역 지방정부에게 한해 20억 정도 사업비를 지원한다면 지자체 및 지역 민간교류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사업을 활발히 진행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돼 있지만 협력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개정이 시급하며, 국회에 발의된 ‘남 북 인도지원 및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되어야한다.

그리고 지자체에서도 조례로 관련 내용을 시스템화 해야 한다.



△평화재단 대표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평화운동, 남북교류 협력사업을 진행하며 숱하게 많은 일화가 있다. 특히, 2000년 첫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그 벅차오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해 2월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과 접촉해 광주전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으로 완도 산 김, 미역 및 구급용품 등을 싣고 인천항을 떠나 북측 남포항(당시 남포직할시)로 향해 5일 가량 머물렀다. 추운 겨울인 탓에 앞서가던 쇄빙선이 두껍게 얼어버린 얼음을 부숴줘야 선박이 나아갈 수 있었고, 갖은 고생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모습은 처참했다. 날씨 때문인지 항구 주변은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 처럼 ‘정지’ 상태였고, 바깥출입을 하는 주민들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북한의 현실을 목도하자 눈물이 쏟아졌고, 더욱 남북교류 협력사업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일화도 있다.

지난 2006년 대북사업의 일환으로 빵공장을 조성하기 위해 북한 노동자들과 며칠 밤낮을 함께 일했다. 그러면서 식사도 함께 하고 술도 마시며 숱한 얘기를 했다. 한창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치 통일이 된 듯한 묘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공장 조성 이후 첫 번째 빵이 생산되자 남·북 관계자가 모두가 서로를 껴안으며 좋아했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됐다. 아마 통일의 기분을 미리 느껴본 듯 하다.



△경실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시단협 등 지역의 굵직한 시민사회단체를 이끌어 왔다. 언제부터 어떤 일을 했는가.

-처음부터 시민운동에 심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당시 동구 충장로에 있던 가든백화점에 입사,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내부의 부조리함과 사회의 모순에 대해 깨닫게 됐고 이후부터 관련 분야의 공부를 하며 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90년 광주전남경제정의실천연합 창립을 주도하며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고 1996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상근 시민운동가가 됐다.

당시 IMF로 광주의 경제상황이 암흑기로 접어들자 기업의 횡포와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앞장섰다.또 고질적인 지역의 병폐를 개혁하는데 시민운동가의 힘이 절실하다고 판단, 시민사회단체의 역량강화에 심혈을 기울렸다.

이어 1997년 백범기념회에 참여한 뒤 1999년 경실련을 나와 광주전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을 주도하며 대북협력 사업에 첫 받을 내딛게 됐다.



△끝으로 지역민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광주·전남 시민들은 높은 의식을 기반으로 통일에 대한 열망이 높다. 때문에 평소 분단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이는 곧 ‘통일 go to 백년’ 운동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광주의 정신은 곧 공동체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신이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 승화됐으면 한다. 관심은 평화통일을 이루는 첫 출발이다. 평화통일은 시민들이 함께 할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프로필>

△광주전남경실련 사무처장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함께하는광주전남시민행동 상임대표

△광주전남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고충처리위원회 옴브즈만 포럼 위원

△광주MBC시청자위원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2015광주하계U대회 남북단일팀 추진단장

△백범문화재단 상임이사

△광주광역시남북교류협의회 상임이사

△사)광주평화재단 대표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광주통일관 관장
송대웅 기자 sdw0918@gwangnam.co.kr        송대웅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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