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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늘 당대의 시국이었다. 얼어붙었던 시국이 풀리면 문화를 위시로 모든 것이 풀렸다. 우리는 이런 시국을 ‘해빙’으로 규정했다. 봄은 이처럼 늘 단어 안팎에서 희망의 대표 명사로 통해왔다. 인생의 가장 황금기 또한 봄에 비유됐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그의 나이 스무살에 발표됐고, 29년의 짧은 삶을 살다간 기형도의 시편들 역시 대부분 20대 때 발표됐다. 인생주기를 비유해보면 20대의 시기가 봄인 것은 분명하다. 2020년대를 사는 20대들은 아픈 시간들이겠지만.
그러다보니 봄은 단순히 해동이 된다는 데 그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다. 반전의 삶을 기대해볼 수 있을 때 적어도 봄은 희망이지 않을까. 한때 봄은 긴 겨울을 뜻하는 독재정권의 반대적 개념에 자리했다. 비로소 오랜 투쟁을 끝내고 민주화된 세상을 맞았을 때 해빙이라는 단어는 자리잡았다.
이제 보름도 채 남지 않은 3월, 완연한 봄이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동백꽃과 산수유는 이미 개화했고, 매화 목련꽃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차례대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 꽃들이 먼저 핀 순서대로 질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리야말로 우리들 삶에 암시하는 바가 작지 않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 바뀐 요즘의 삶에서 봄은 각별하다. 정치권력의 새로운 판이 짜여질 대통령 선거가 3월9일에 실시돼서다. 지금 대선 시계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주변에서 누가 될 것 같냐”고 물어온다. 그냥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게 전부다. 도덕적 우위에 선 후보 대신, 전국민에게 1억원을 주겠다는 후보의 선캠 전화와 원치 않은 대선 후보의 우편물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정치의 위상이 있기는 하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기다 북한의 잦은 미사일 발사로 남북은 몇년째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해빙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이처럼 대선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고, 국가 밖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 세계 정세가 어수선하다. 지구촌이 전쟁의 위협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벌써부터 신냉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봄이 다가왔지만 현실은 여전히 동토의 시간들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봄이 눈앞이지만 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한류가 전세계적인 현상이 됐다는 것이다. K팝을 위시로 드라마와 뷰티, 무비, 방산, 한국어(한글), 가전 제품, 푸드 등 한류의 위세가 지구촌을 매섭게 강타하고 있어서다. 이번 유행은 한시적 흐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대두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모든 일상이 흐트러지고 있는 요즘, 우리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믿음이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면 전세계적 유행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어느 서구 열강들 하나 주목하지 않던 극동의 작은 나라가 일으킨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이 역사적으로 봄의 시기인 듯하다.
봄은 기운생동한 호흡이 있고, 기다림이 없어도 오기 때문에 설렘이 있다. 신동엽은 시 ‘봄은’을 통해 ‘봄은/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오지 않는다./너그럽고/빛나는/봄의 그 눈짓은,/제주에서 두만까지/우리가 디딘/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고 노래했고, 이성부는 시 ‘봄’을 통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했다.
시인들의 노래처럼 그냥 논밭에서 움트는 것이 봄이고, 기다림을 잃어도 오는 게 봄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들 마음에 봄이 깃들 때 진정한 봄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봄날, 해빙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