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처럼 따뜻한 기운 감도는 음악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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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

모닥불처럼 따뜻한 기운 감도는 음악 선사

[남도예술인] 독주회 연 광주 출신 피아니스트 장지원
서울예고·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마쳐
한예종 전문사 반주 재학 중…‘엘리트 코스’ 실력 쌓아
동구 산수동 소재 ‘라뜰리에75’서 연습 매진·음악 교류

피아니스트 장지원씨는 “혼자(피아노 연주)든, 여럿이든(반주) 음악은 ‘나’ 혹은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을 청자와 상호작용하며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모닥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아노 앞에 앉은 다섯 살 짜리 여자아이. 그가 건반 위에 손을 얹고 꾸욱 누르자 ‘도’가 흘러나온다. 손가락에 힘을 주자 좀 더 힘찬 ‘도~’가 울려 퍼진다. 그는 손가락으로 어떤 건반을 누르는 지, 어떻게 손을 움직이는 지에 따라 여러 음이 흘러나오고, 그게 모여 멜로디가 돼 들리는 게 신기했다고 한다. 어떻게, 어떤 건반을 누르는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피아노, 그런 피아노를 치는 게 마냥 좋았다. 그렇게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자기 전 일기장에 피아니스트가 되겠노라고 적었다. 광주 출신 피아니스트 장지원씨가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다.

그는 최근 광주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독주회 이후 4년 만에 오른 무대였다. 피아니스트 장지원의 ‘귀국 독주회’를 기대한 이들에게 그가 선물한 것은 귀국 독주회가 아닌 ‘독주회’였다. 대부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 귀국 독주회를 여는 게 일반적인데,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그가 궁금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동구 산수동에서 연습실 ‘라뜰리에75’(latelier75)를 운영하며 서울과 광주를 오가고 있다. 그는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쭉 학교를 다녔고 성인이 된 뒤에는 프랑스에서 9년간의 유학생활을 했다. 귀국해서도 여전히 광주와의 끈을 놓지 않고 여러 연주자들과 음악적 교류를 갖고 있다. 운영한 지 3년 여가 된 라뜰리에75에는 그간 바이올린과 첼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기타, 아코디언, 트럼본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 다녀갔다. 일대일 레슨을 하기도 하고, 음악 종사자들이 모여 함께 연주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항상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하곤 해요. 광주는 제가 태어나 자라난 곳이지만 중·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그 이후에는 더 먼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랐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가족들이 있는 광주로 다시 돌아왔고, 이곳에서 제 연습 공간이자 연습실이 필요한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20년 여름 정식으로 ‘라뜰리에75’를 오픈하게 됐어요.”

독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 장지원씨.
무대에서 다른 악기와 합을 맞추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피아노 연주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그는 호남권에서 점점 상을 휩쓸더니 고학년이 되자 금호문화재단 영재 아티스트로 선발돼 데뷔 리사이틀을 갖고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 무대에도 올랐다. 실력 발휘를 했던 콩쿠르에서 알게 된 심사위원의 추천으로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연습을 지속하다 예원학교에 입학한 데 이어 서울예고에까지 진학하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작은별 변주곡’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곡으로 호남권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초·중·고등부 전체대상을 받았었어요. 그때 당시 서울에서 심사위원으로 오셨던 모 교수님께서 콩쿠르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를 직접 찾아 오셔서 서울에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추천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한창 입시에 매달릴 즈음, 그는 우연한 기회로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연주자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게 된다. 그게 유학길에 오른 계기가 됐다. 9년간 그는 프랑스 파리시립음악원을 거쳐 리옹국립고등음악원 학사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이후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수석으로 입학해 석사 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그 사이 프랑스 다수 콩쿠르에서 수상은 물론이고 장학금 수혜를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고, 피아노 독주회와 초청 연주회 등 여러 무대에 올라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프랑스에서 빌리 에디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 프랑스 시립음악원이라는 학교에 입학했죠. 2년간 프랑스어 공부와 전공수업을 병행하며 학사 입학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이후로는 마리-조셉 주드 교수님과 리옹국립고등음악원,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학사, 석사, 최고연주자과정 공부까지 하게 됐죠. 한국에 돌아와서야 9년간의 유학생활이 너무나도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유학 생활을 돌아볼 여유가 부족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접하면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 셈이다. 유학 생활이 삶 전반과 음악적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음악적 취향이 어떻게 변했으며, 연주자로서 어떤 이상향을 꿈꿀지 등 정확히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유학을 떠났던 2011년 여름과 2023년 여름을 앞둔 현재를 비교해보면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장지원씨가 연주하는 모습
사실 그는 귀국길에 오르던 시기 아직 음악적으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느끼던 때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갑작스럽게 돌아오게 되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깊었다. 마침 피아노 음악보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 듀오 형식으로 연주되는 음악들을 자주 들을 때여서 이번 기회에 배워보면 어떨까 해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두 달간 입시를 준비, 우수 장학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반주에 입학, 현재 재학 중이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무대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반주를 하면서는 연주하는 파트너가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죠. 그러면 제가 낼 수 있는 2~3배 이상의 효과가 나기도 해요. 피아노가 구현해 낼 수 없는 비브라토를 현악기가, 독자적인 음색을 갖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를 통해서요. 결국 혼자(피아노 연주)든, 여럿이든(반주) 음악은 ‘나’ 혹은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을 청자와 상호작용하며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는 피아노를 향한 순수한 마음이 어느 순간 애증으로 변하는 시기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돼 피아노의 진면목을 나날이 느끼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것은 말이 아닌 소리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점이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듣는 이와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게 아름답다는 것. 여러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피아노의 매력으로는 작은 오케스트라 같은 악기이기에 여느 악기와도 잘 어우러진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자신의 연주로 사람들이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음악으로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모닥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 음악을 통해 춥고 시린 마음을 잠시나마 녹일 수 있는, 마음 한 구석 따뜻함을 전달하는 음악가였구나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무대에 오를 때 그는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연주하자고, 주변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느껴 그 순간에 집중하자고 되뇌인다. 이런 그의 무대는 내년 봄, 광주와 서울에서 미뤄뒀던 귀국 피아노 독주회로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올해는 오는 6월 북서울꿈의숲아트센터에서 유문선 클라리넷티스트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12월 한예종 이강숙홀에서 반주과 졸업 리사이틀을 올린다. 라뜰리에75 운영을 통해 국내외 음악인들과 교류,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넓혀나간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정채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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