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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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당연하게도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문화산책] 폭설이 내렸다. 추위가 한창이다. 겨울이 무르익어가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다. 매서운 겨울 날씨를 체감하니 이제 곧 갈무리해야 할 2023년의 시간들을 뒤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한 해의 끝자락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여러 가지 일이 많고 어려움도 많다는 한자어이다.

2023년은 그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이라고 믿었던 상식들이 일순간에 전복되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으니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연일 들려오는 뉴스 기사들은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뉴스 사이에 스멀스멀 자리 잡은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감은 원하지 않은 필수 옵션처럼 따라 붙었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상식이 무너진 사회, 세상에 무개념이 많아진 이유’라는 제목의 콘텐츠가 게시되었다. 네 명의 패널들이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청소년 마약 사건 등 올 한 해 사회적 공분을 샀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원인과 해법을 찾아 나서는 대담 형식의 이 콘텐츠는 단숨에 14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댓글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너무 필요한 주제의 토론 콘텐츠입니다. 이런 주제를 다루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드립니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울분이 있고, 탈락하는 사람들을 감싸지 못하는 사회적인 구조에 있다는 말씀 너무 공감합니다.”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 안의 모를 불안이 모두 완벽주의 성향과 경제적 불확실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받아들이고, 나를 움직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콘텐츠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과 폭발적 관심은 최근 심화되고 증폭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빈부의 격차, 정서적 빈곤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사회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해법은 묘연하지만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확산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완충지대를 늘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SNS에서 ‘심박수 챌린지’라는 포스팅을 종종 보게 된다. 최근 누적 관객 1000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서울의 봄’과 함께 유행하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스트레스 지수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심박수로 인증하는 온라인 이벤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쌓인 분노한 마음을 심박수에 담아 표출한 MZ세대의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벌어진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이다. 1979년 유신 정권이 무너지고 봇물처럼 터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고 군인들의 총성에 묻혀버린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황정민을 비롯한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극적 몰입감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극적인 서사, 치밀한 연출, 출연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OTT 플랫폼의 확대와 함께 한국 영화가 침체기를 걷고 있는 요즘, ‘서울의 봄’의 흥행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광주 시민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영화를 보고 5·18 묘역을 참배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하니 더욱 반갑다.

주인공 전두광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광주에서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황정민을 울린 것은 한 시민이 든 손팻말이었다. ‘서울의 봄이 광주에 오길 43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시민이 든 손팻말에 적힌 글이다.

이 영화의 흥행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한 보수단체는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했다는 이유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을 고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과 함께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연일 고조되어 가고 있다. 검사 독재라는 용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군 내부의 사조직 ‘하나회’가 쿠데타 이후 국정 핵심 요직을 장악했던 일과 대통령 사단이라고 불리는 검찰 인맥이 국정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현 정부의 사건들이 오버랩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결코 역사가 남긴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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