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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 준비를 해왔다. 김장하는 일은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고, 문풍지를 바르고 추위를 대비하는 집단속을 하였다. 오늘날, 아파트는 월동 준비할 필요 없이 따뜻하고 쾌적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춥고 허기져서 겨울 지내는 일이 걱정이다. 밥을 얻어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노숙자들의 잔인한 겨울도 기억한다. 어린 소년가장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다. 연탄을 구하지 못해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한다는 독거노인들의 한숨 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다.
우리 동네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다. 유모차에 폐지를 주워 담고 다니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저분은 자식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서로를 경계할 때 그 할머니는 겨우내 보이지 않아 돌아가신 줄 알았다. 지난봄에 핼쑥한 모습으로 집 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몸 져 있었다고 했다. 동사무소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보살펴서 다행히 새로운 봄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겨울을 극복하지 못하면 봄을 맞을 수 없다. 어떻게 겨울을 잘 지낼 것인지 그것이 관건이다.
폭설이 내린 후 나무들이 눈 속에 발목을 적신 날 눈 폭탄을 맞은 앙상하고 찢어진 나뭇가지에 굴뚝새마냥 작은 새 몇 마리가 앉아서 지저귀고 있다. 새 소리가 왠지 울음소리처럼 들려왔다. ‘눈 속에서 먹이는 어떻게 구할까?’라는 걱정이 든다.
광주천 징검다리를 건너가며 얼음장처럼 시린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본다. 추워서인지 움직임이 줄었다. 천변에서 사람들이 입김을 내뱉으며 움츠린 몸짓으로 뛰어간다. 천변에 있는 나무들은 지난 계절 무성했던 나뭇잎들을 모두 떨구고 바람에 흔들거린다.
겨울 들판은 눈에 덮여 시베리아 동토처럼 엎드려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도 끈질긴 생명들은 푸르름을 잃지 않고 숨죽이고 있다. 수만 년 학습을 통해 터득한 생명 보전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봄은 그냥 오지 않는 법이다. 온몸으로 바람 소리를 내며 서 있는 소나무의 북쪽 방향의 나이테는 겨울을 견딘 인고의 세월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눈과 바람, 그리고 극한의 추위를 견딘 훈장 같은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싹을 틔우지 않은 나무들도 있다. 겨울을 견디지 못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농부는 겨울 보리밭에 나가 보리를 밟아주었다. 보리밭에 서릿발이 서면 보리의 뿌리에 바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발로 밟아주어야 보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농부는 농작물에 병이 생기고 벌레가 생겨나면 농작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어미가 새끼에게 젖 먹이는 것처럼 헌신적인 사랑을 베푼다.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 학교 가는 아이의 목에 목도리를 감아주면서 나 아닌 누군가에게 목도리를 감겨주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온갖 곤충들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는지, 그것들의 안부를 걱정했는지 묻는다. 밤새 울던 새끼 길고양이의 행방을 궁금해했는지 묻는다. 모두가 잠든 겨울 밤 허기와 추위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버려진 강아지의 안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지도 묻는다.
아니, 나에게 묻는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밤새 콜록거리며 밤새 끙끙 앓는 밤을 생각해보았는지, 지난 여름 뙤약볕에 폐지 리어카 앞에서 땀을 훔치던 노인의 안부를 한 번쯤 생각해보았는지, 학동 참사 사건으로 쓰러진 가로수 플라타나스 여덟 그루의 행방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 아침 출근길 차에 치여 펄쩍펄쩍 뛰다가 죽어간 고양이의 억울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도 묻고 싶다.
이제 며칠 후면 새해다. 새해가 오면 ‘성실한 사람이 되겠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 ‘부모님께 효도하겠다’ 등 나 아닌 누군가에게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한 해를 보내고 나면 이러한 다짐들은 모두 공염불이 되어 자책하는 마음은 상실감으로 상심이 깊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새해에는…’하고 다짐해야 한다. 언젠가는 새해 아침에 꿈꾸고 다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또다시 ‘이번에는 제발 나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 세상이 눈에 덮여서야 비로소 푸르름이 더욱 빛나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결기를 읽은 옛사람들처럼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모든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