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고발, 관음증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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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고소, 고발, 관음증의 나라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문화산책] 대한민국은 오늘도 여전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으로 혼돈스럽다.

격동과 파란의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배신하고 팔아 넘겨야 했던 야만의 시대는 분명히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확신하는데 우리가 일제 식민지 시대와 동족상잔의 6·25 전쟁에 이어 기나긴 군사 독재시대를 살아오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더럽고 비열한 형태로 자리 잡고 말았던 게 바로 남을 무고(誣告)하는 나쁜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이 수치스러운 치명적 허들을 끝내 넘지 못한다면 먹고는 살지 모르지만 성숙한 민주국가 시민으로서의 명예로운 삶은 요원할 것이다.

대검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접수된 고소, 고발사건은 65만 건이 넘었다. 우리와 형사사법체계가 거의 동일한 일본의 경우 피 고소 인원이 연간 1만 여명 정도이다. 이것을 인구기준으로 계산하면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비해 무려 100배 이상 고소, 고발을 하고 있고 고소, 고발을 당하고 있다. 10배도 아니고 100배다. 이 정도 되면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싶다. 너무 부끄럽고 기가 막히지 않는가.

나도 그동안 공 기관에서 일해 오면서 악성 민원이나 투서에 의해 몇 차례 내사(內査)나 감사(監査)의 대상이 되었었고, 심지어 검찰 수사도 한차례 받은 적이 있다. 물론 투서 내용이 사실관계와는 너무나 다르다보니 별일 없이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때 입은 마음의 깊은 상처와 인간 지옥을 경험했던 기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음해성 민원을 제기했던 사람들은 대게 뻔히 보이는 사익(私益)이나 집단적 이익을 위해 아주 일부의 ‘팩트’를 섞어 거대 악(巨大 惡)이 존재했었다는 소설(小說)을 창작해내는 특별하고 사악한 재주가 있는 자들이거나 아니면 ‘사실’과 ‘의견’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무지한 자들이다.

또 이들은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고발제도를 악용하여 ‘무고죄’로부터 미꾸라지 새끼처럼 빠져나간다. 억울하게 고통 받은 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형사적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비용과 수고가 드는데다 또 다시 같은 일들로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 주변의 만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도중에 그만두고 만다.

수일 전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받던 한 유명 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수사를 받는 일 자체보다 온갖 구설수와 악의적인 소문들이 그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수치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심지어 유튜브를 통해 그의 내밀한 녹취록이 공개되고 말았을 때의 충격은 그가 삶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게 하는데 충분했을 것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그 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불렀던 ‘아득히 먼 곳’이라는 옛날 가요를 들어봤다. 그러다 갑자기 브람스가 듣고 싶어졌다. 브람스의 음악은 깊이가 있고 진지하며 철학적이다. 교향곡 3번 3악장을 반복해 들으면서 아까운 배우의 허망한 끝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눈가가 젖어들더니 끝내 보잘 것 없는 내 자신의 회한 가득한 삶에도 감당하기 버거운 ‘현타’가 왔다.

지방검찰청의 사무관으로 있는 친구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요즘 세상에 사람 좋다는 말은 욕이다. 아주 독하게 투쟁적으로 살아야 한다.” 아니, 사람 좋다는 말이 욕이라는 사회가 멀쩡한 사회인가? 가십거리 하나 생기면 피라니아 떼처럼 달려들어 살점을 뜯고 찢어발겨서 한 영혼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누리꾼들의 야만성은 또 어떤가. 온갖 거짓 소문과 모함과 불법행위에 끝없이 상처를 입어도 한없이 인내해야 하고, 끝내 법질서에의 호소조차 단념하게 만드는 이 사회 또한 정상이 아닐 것이다.

남 말하기 좋아하고 없는 말 지어내어 무고한자를 고통의 지옥에 빠뜨리는 자들에게 예비 된 성경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라.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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