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후보의 간절함과 서민의 절실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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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국회의원 후보의 간절함과 서민의 절실함 사이에서

박기복 영화감독

박기복 영화감독
[문화산책] 근래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출판 기념행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봇물 터지듯 성황을 이루고 있다. 마치 출판 도서박람회를 방불케 한다. 필자도 몇몇 후보의 초청을 받아 출판문화산책을 다녀왔다.

매매 임대 내놓은 썰렁한 거리 상가를 거리를 지나 행사장으로 찾아가는 길이었지만 딱히 이정표 없이도 멀리서 들려오는 풍악소리에 행사장임을 직감할 수 있다.

난타, 트로트, 클래식, 판소리 등 문화예술인들이 식전 분위기 바람을 잡으며 축제 열기로 가득하다. 축제 열기 저변에는 현역의원과 와신상담 때를 기다려 온 후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맞장을 피부로 느끼며 은근한 긴장감을 갖게 하는 것 또한 행사 볼거리다.

선거 제도 시초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도시국가나 게르만 부족 사회에서도 실시된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 인류가 사회집단을 이루기 시작하면서부터 존재했을 거란 상상을 해본다. 집단을 이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집단의 리더이든 두목이든, 오늘날의 정치인이 필요했을 것이고 어떠한 방식과 방법으로든 자신들의 리더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 선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의 리더가 됐든 그들은 집단의 재산과 생명과 안정된 생활을 지키고 보호할 능력과 책임과 희생정신을 요구한다.

필자가 기대하고 참석한 출판기념회는 음향오디오 기계음과 자화자찬 영상과 노래와 춤의 공연과 박수 함성의 기억만 남는다. 그저 나름대로 정교하게 연출된 지지자를 동원해 세 과시와 판매 부수 늘리는 데 목적을 두는 듯 했다.

필자가 기대했던 것은 무대 진행 첫 순서에서 등장한 후보자가 정치를 망가뜨리고 경제를 몰락시킨 대 대해 참회의 묵념이라도 하면서 시작하는 거였다. 현역의원이 됐건 도전하는 후보자가 됐건 국회의원 후보자라는 공동 운명체 안에서 책임과 진정어린 사과와 대책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유권자들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한번 여의도에 발을 내딛으면 함흥차사가 되어 지역 현안에 대해서는 코빼기도 내보이지도 않던 후보들이 책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책 쓸 시간은 있었나 보다’ 혹은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면 책으로다 엮을 생각을 했을까?’ ‘지역민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정보라도 수록해 놓은 걸까?’ ‘내 고상한 시집살이 야기 할라치믄 책 백 권을 엮어도 부족할 것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머니 말씀도 떠올랐다.

평생 직업을 시인, 소설가로 살아온 문인들의 출판 기념회와 오버랩 된다. 한권의 시집, 소설집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작업에 매진하고서도 겨우 입에 풀칠도 못한 노동 작가들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는다는 대한민국이 문화예술 관련 예산 비중은 세계 50위권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K팝, K무비 성공 이면에는 척박한 여건과 환경을 극복한 문화예술 장인들의 희생과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데 정부나 정치인은 마치 그들의 전리품처럼 떠들어대면서 대한민국 문화예술 수준의 척도인양 생각하는 그들의 머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정부는 내년 정부 예산·기금 운용계획안 중 문체부 예산안은 총 6조9796억원으로 올해 대비 총 2388억원(3.5%) 증액해 편성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전제 예산 겨우 1% 넘는 수준이지만 문화예술지원 예산은 증액은커녕 오히려 436억원 깎였다.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은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가장 가깝게는 후보들의 자서전 출판 행사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친 예술가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민심을 헤아리고 최소한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는 후보자라면 무대 위 슬픈 삐에로 같은 문화예술인들의 고민에 더 가까이 가줘야 하고 귀담아 들어 줄줄 알아야 한다.

역 대급 지리멸렬한 야당의 의회 활동과 민생, 안보의 불안과 위기감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출판 기념식은 참으로 뻔뻔하고 염치없어 보인다.

4년 전이나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매뉴얼 형식만 다른 패턴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걸 보면 정치 선거의 낙후성이 기이할 따름이다. 인공지능이 등장한 세상이다. 후보자들 스스로가 무지해서 그렇지 빛나는 아이템 하나로도 돈과 조직 선거를 능히 능가하는 홍보마케팅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다음 선거는 당론으로 정하든 법으로 정하든 출판기념은 사라졌으면 하는 필자 개인적 바람이다.

서민은 자신과 가장 얼굴이 비슷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닮은 후보를 선택한다. 후보들 또한 서민들의 얼굴과 삶의 패턴을 닮아 가면 유권자들에게 선택받기 쉬워지는 일이다.

지역 일꾼을 뽑는 이번 선거는 미스트롯 경연장이 아니다. 지금 서민은 오른 물가가 고통스럽고 끼니를 걱정한다. 오늘 당장 저녁 식탁에 오를 생선 한토막이라도 내놓을 가족의 행복한 풍년식당(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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