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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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학생들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박병진 성덕초 교장·교육학박사

박병진 성덕초 교장·교육학박사
[아침세평] 이 글은 입시와 시험 점수에 매여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들 만나 재미있게 놀고 맛있는 급식 먹는 것이 학교에 오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초등학생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어린이는 놀면서 자라고 꿈꿀 때 행복하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어린이의 놀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어린이에게 놀 터와, 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는 2015년 전국시도교육감 협의회에서 발표한 어린이 놀이헌장에 담긴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는 UN아동관리협약 제31조에서도 “아동에게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 광주시에도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가 제정돼 있고, 광주시교육청에서도 매년 학생 놀 권리 보장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모든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학생들의 놀 권리는, 지금 초등학교에서 얼마나 잘 보장되고 있을까?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이다.

결론의 앞에 ‘아직은’이 붙은 이유는 그래도 그런 방향으로 조금씩 진전하고 있기 때문이고, 뒤에 ‘아니다’가 붙은 이유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의 놀 권리 보장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놀 시간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놀 장소를 주자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기본권인 놀 권리를 잘 제공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가 쉽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 놀 권리 시간이란 쉬는 시간 10분과, 중간 놀이 시간 20분, 그리고 점심시간 등을 더 늘려주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늘이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현재 초등학교의 일과 시간은 수업이 2시 30분에 끝나는 것으로 대부분 운영한다.

이는 선생님들에게 다음 수업 준비 시간을 마련해 주려는 면도 있고, 많은 선생님이 이용하고 있는 육아시간이나 모성 보호 시간 등을 보장해 주려면 2시 30분까지 수업이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 시간은 이후 방과후학교와 돌봄 그리고 사설 학원 운영 등과도 연계돼 있어 대부분의 학교에서 오랫동안 굳어진 관례가 돼 있다.

두 번째, 학생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도 만만치 않다. 소규모 학교는 그렇지 않겠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학교에서는 학생 수에 비해 운동장과 놀이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또 이런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동시에 식당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학년별 급식 시간이 다르다. 이는 우리 학년은 점심시간인데 이미 다른 학년이 운동장이나 강당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학생들이 다치는 문제에 대해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매우 예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도 학생들에게 놀이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선생님들은 가능하면 선생님이 볼 수 있는 시야에 학생들을 둬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매우 크다.

실제로 학생들이 교사의 시야를 벗어나면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교사들에게 조를 편성해서 매일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안전관리를 하도록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학생들의 놀 권리 보장 정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놀 권리를 잘 보장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학교 교육과정 운영 시간에 대한 교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어떤 학교에서 학생들의 중간 놀이 시간을 10분 더 늘리려 했고, 교사들은 다른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이거나 쉬는 시간 없는 이른바 블록 수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이를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둘째, 공간이 부족한 학교에서는 지금 있는 공간을 어떻게 촘촘히 잘 나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한다.

운동장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수업으로, 다른 한쪽은 점심시간인 학년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또 학교 건물 주변에 있는 여러 빈 공간과 숲에 바닥 놀이터와 숲 놀이터를 만들어 학생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물론 이런 놀이터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들어져야 하고, 교사 연수와 학생들에 대한 놀이 지도가 먼저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놀 권리를 잘 보장해 주려면, 학생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잘 놀 수 있도록 놀이 지도와 안전을 지켜주는 지원 조직이 잘 운영돼야 한다. 이는 교사뿐 아이라 학부모, 학생 자율 동아리, 마을교육공동체 등과 연계해서 운영하면 될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UN 아동 관리협약 31조 위원회”라는 학부모동아리가 만들어져 활동을 시작했다. 내년에는 6학년 학생동아리도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규모 학교에서 학생들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이 가능하겠는지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학생들이 좀 더 행복한 학교를 위해 교장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한번 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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