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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언 음악감독 |
나는 1993년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앨범의 타이틀곡 ‘하여가’를 통해서 퓨전 된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다. 락사운드에 사물놀이를 접목시켜 나온 이 곡은 고 김대중 대통령도 ‘참 이채롭고 다채로운 신식 국악’이라고 표현했던 곡이다. 곡 중간의 태평소 소리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피처링으로 유명하고 라이브콘서트에서 태평소 연주는 장사익이 했다. 이는 장사익이 가수로 본격적 활동을 하기 전의 일이다. 이 태평소 연주 때문에 이곡은 국악 전문 프로그램들에서 틀어주는 일까지 생겼다.
이 곡의 중간부터 등장하는 국악기들의 소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마음에도 꽤나 근사하게 들렸다. 아마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국악이 아닌 대중음악 청취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이 곡의 역할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곡은 당시 한국의 빌보드차트였던 ‘가요톱 10’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였다. 하지만 요즘도 가요계에서 가끔 일어나는 역주행 곡이 등장하는 바람에 골든컵은 수상하지 못했다. 하여가를 제치고 골든컵을 차지한 곡은 김수희의 ‘애모’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의 오랜 전통이 품고 있는 가치를 소중히 생각할수록 계승이라는 것은 조심스럽고 심오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좋은 작품들은 오히려 쉽게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틈새가 존재한다. 우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것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좋다고 느낀다. 이는 음악과 음식이 동일하다. 어떤 식당에서 먹은 김치가 맛있다면 그것은 내가 언젠가 그 맛의 김치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릴 적 할머니께서 쌀밥 위에 올려주던 김치 맛의 추억 때문일지도…. 전통은 우리 삶의 곳곳에 묻어 있고 존재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어도 항상 접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리랑을 들으면 마냥 좋은 것이다.
좋은 선배들과의 인연으로 2024년 제41회 ‘고싸움놀이축제’에서 연주하게 되었다. 처음 뵙는 분들도 있고 오며 가며 만나 뵌 분들도 있지만 좋은 기획자와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레고 행복하다. 고싸움놀이축제는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서 행해지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보름 놀이다.
싸움이 놀이가 된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자고로 윷놀이, 바둑, 장기, 체스 등 놀이는 싸워야 제맛이다. 전통의 고싸움놀이는 칠석동 마을 상·하촌 아이들이 조그마한 고를 만들어 서로 어르고 놀리면서 싸움이 커져 15일에는 온동네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본격적인 놀이가 되어 절정을 이룬다.
고싸움놀이에서도 음악을 담당하는 농악대의 역할은 중요하다. 농악대는 고싸움놀이의 행진에서부터 고싸움놀이가 끝날 때까지 전의를 북돋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고의 제작이 완료되면 고를 메고 각각 자기 마을 앞을 행진하는데, 서부팀은 하칠석 앞을, 동부팀은 상칠석 앞을 행진한다. 이때 각 팀의 풍물패들이 동행하면서 놀이의 축제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전의를 북돋운다.
항상 분위기를 몰고 기세를 잡는 것은 음악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고 조율하는 사이 흥이 올라 신이 난 나를 발견한다. 커다란 북소리에 기타를 연주하다 보니 드럼에 맞추어 연주할 때와는 다른 울림을 느낀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져 근사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서로 다름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 그렇다. 사람이구나.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것이 흥이 되고 이것이 놀이패가 되는구나. 그동안 음악에 중심을 두고 생각했던 마음이 바뀐다. 음악은 그다음이다. 사람이 더 우선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스텝들과 예술가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심이다. 뒷짐 지고 서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함께 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빛에서 열정을 본다.
그렇다. 과거를 살았던 것도 사람이고 미래를 살아가는 것도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재미있게 이루어진다. 시너지가 일어난다. 과거를 살아본 사람과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계승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명이 쏟아지는 공연장에서 연주해도 폭포수 밑에서 피를 토하며 세상을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량과 소양을 갖춘 프로 뮤지션들이 많은 광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예향의 도시를 지켜나가는 원동력이다. 지역에서 살아가지만 월드클래스의 시선과 기량을 갖추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보고 항상 노력하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 과거를 움켜쥐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 정월대보름 달집의 불꽃처럼 우리의 예술이 뜨겁게 타오르는 한 액운이 끼어 들 자리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