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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기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아침세평] 제목이 어벌쩡하다. 삶의 자락에서 누구나 한번쯤 투쟁의 갈마(역사)를 갖는다. 투쟁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일이다.

남을 이기려고 싸우기도 하지만 마침내 나를 이기는 싸움이다. 투쟁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몫을 지키는 일이다.

머리띠에 ‘합격’을 써서 두르고, 책상머리에 ‘해야 한다’를 써 붙인 적 있다. 아름다운 앞날이 올 거란 꿈을 꿨다. 졸다가 꿈에 빠지기 일쑤였지만. 그때 졸지만 않았어도 지금!

투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걸핏하면 찾아오는 졸음을, 몸으로 밀어내야 한다. 끈질기게 얼씬거리는 게으름을 마음으로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겨내야 한다. 뜻밖에도 머리띠와 좌우명은 집중력에 큰 도움을 준다.

음치를 벗어나려고 노래를 익힐 때 머리띠를 두르니, 볼 줄 모르던 악보가 또렷해졌다. 가수 뺨치는 솜씨가 되리란 믿음도 생겼다. 악보 따라 목청 높이다가 음 이탈하기 일쑤였지만.

그때 노래를 멈춘 것은 잘했다. 사람들의 멀쩡한 귀에 시끄러움만 안겨줄 뻔했다. 지금 노래 한 곡이라도 떠오르는 건, 지칠 때까지 불러 젖히던 연습도 한 몫했겠지만 머리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의 20대 날적이(일기장)에는 밝은 미래보다 좌절이 더 많이 적혀있다. 5·18민주화운동을 짓밟고 태어난 2차군사독재시절이었으니까. 오늘의 20대들 날적이에는 그만두겠다는 절망보다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적을 수 있는 나라이면 좋겠다.

머리띠를 두르지 않았지만 머리띠를 두른 듯 허우적거리던 때도 있었다. 옳음을 몸에 담으려고 낑낑대면서 꼿꼿하게 살았다. 바름을 세우려고 억척스럽지만 한눈팔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 그랬듯 나를 올바르게 지키고, 사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다짐들이 지금 두루 먹히는 사회이면 좋겠다.

제가끔 먹고 사는 밥벌이에 삶을 맡기고 저저끔 목적에 목을 맬 때, (진짜 목을 맬 때 있었다.) 외로움에 이를 갈며 사람들 사이를 헤맸다.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이웃을 보지 않고 제 몫만 줄곧 챙기는 사람을 멀리 했다.

홀로 술집에서, 혼자 책상에서 머리띠를 매만지며 힘겹게 버둥거렸다. 누구나 한번쯤 부조리에 맞서 지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지 않았는가? 그런 안간힘들이 체포돼 감옥에 가는 벌을 받는 게 아니라 빛을 내어 아이들이 본받아 배우는 모범이 되는 시대이면 좋겠다.

지금이라고 머리띠 투쟁이 없는 건 아니다. 망가지는 몸뚱이 아프지 않으려 걷고, 알맞은 먹을 거리를 찾아 먹는다. 키오스크 같은 기술을 익히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길 거라는 희망은 버렸지만 낙오될 거라는 절망을 갖지는 않으면서.

태어날 때부터 가장자리의 삶이었는지 살다가 조금씩 밀려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돈이 큰 값어치로 우뚝 선 새로운 정의가 나에겐 낯설고, 내 집단만 잘살면 된다는 새로운 상식은 멀게만 느껴진다.

민주화 된 마당에 무슨 투쟁 타령이고, 머리띠 타령이냐고? 훗, 바로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고 삥등그리지(외면하지) 마시라. 나는 괜찮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고? 굿 보다가 물벼락 맞고, 떡 먹다가 체할 수 있다.

새롭게 가꾸지 않으면 언제든 뒤처지고 밀려난다.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자기 몫을 지키려고 꾸준히 애써야 한다.

가만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서 편안할 것 같으나 가만 있으면 누군가 내 몫을 야금야금 뺏어 먹고, 누군가 내 자리를 시나브로 빼앗는다.

민주화도 투쟁해야 쟁취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언제든 잘난 체하는 사람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

머리띠 둘러보지 않은 사람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투쟁하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알랑거리며 살면서 지배자의 처분만 기다린다.

젊어서 제대로 투쟁하지 못한 나는 요즘 작은 투쟁을 한다. 이웃을 팔아 돈을 번 밀정 같은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고, 언저리를 짓밟아 쥘락(권력)을 휘두르는 갑질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며 1회용 화장지를 쓰지 않고, 웬만한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

힘없는 몸부림이지만 똑똑한 약자가 되고 싶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야 한다. 희망만이 살 길이다. 어리석을지 모르나 작은 실천이 갑질을 줄이고, 작은 투쟁이 희망의 끈을 이어가면 좋겠다. 어떻게 지켜온 대한민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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