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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영화감독 |
오늘날 한국사회의 콘텐츠에 대한 개념은 디지털 기술에서 구현되는 내용물로 국한해 경제적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짙다. 정부는 다양한 문화콘텐츠 유형 중에서도 영상, 게임, 애니메이션, 모바일 등 디지털콘텐츠 분야에 많은 예산을 들여 글로벌콘텐츠 육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방향설정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는 물론이고 민간기업과 개인까지 디지털을 활용한 문화콘텐츠가 경제적 수단인양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날그날, 그때그때 잘 팔리고 먹히는 상품을 소비자들의 눈에 띄는 공간에 배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문화 유행은 생명력이 짧다. 물론 진화되고 창의적인 문화 상품은 계속 나오겠지만 문화를 향유하고 관광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전문가들도 쉽게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최신 공학기술로 발현되는 디지털 문화예술을 통한 문화콘텐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인문학과 인문정신이 깃든 역사와 전통의 문화콘텐츠가 디지털과 만나 또 다른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디지털 핵심 두뇌는 궁극적으로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만이 수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돼 있다. 과거 인물의 궤적, 사건, 시대정신 그 모든 역사가 현재와 만나 조화를 이룬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데 고민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균형 잡힌 지역문화의 공유와 가치 실현, 인간 삶의 정신적 풍요와 같은 문예부흥의 순기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장선에서 필자는 최근 화순군에서 ‘능주 역사문화도시 거점 공간 개발사업’에 조선 중종 때 개혁정치의 아이콘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20)를 소환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화순군의 용기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여겨져 내심 마음이 들떴다.
올해는 조광조 사후 505년이 되는 해다. 조광조는 38세라는 비교적 짧은 나이로 생을 마쳤지만, 조선 역사상 자신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위해 죽음마저 기꺼이 받아들인 실천적인 행동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암 조광조는 800여회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불과 4년 정도의 짧은 정치 인생의 중심에 섰던 정암이 조선 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자주 언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암의 사상적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이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27권, 중종 12년 1월20일 병신 2번째 조광조 기사를 찾아봤다.
“임금과 백성은 본래 일체(一體)로서 마음과 몸은 어느 하나도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은 마땅히 백성을 어린애처럼 보호하여 그들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고 그들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여겨야 할 것입니다.”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훈구파를 척결하는데 앞장선 조광조는 주자학의 핵심인 도학정치를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려 했다. 그러나 위기를 느낀 훈구파와 왕권의 위협을 느낀 중종에 의해 기묘사화를 불러오게 되고 결국 화순 능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정신은 조선이 518년을 유지하는 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전남도 투자심사위원회는 조광조라는 인물에 중점을 둔 콘텐츠는 지금의 관광 트렌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 관광 추세에 맞춰 장기적인 관점으로 시설을 계획해야 한다’거나 ‘핵심 주제를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등 콘텐츠 적절성에 의문을 표시하며 사실상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입장이라 한다.
아는 것만 보이는 사람들에게 디지털문화 콘텐츠와 인문역사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문제는 문화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창작자들의 아이디어와 신념과 자신감의 문제라 여겨진다. 필자는 ‘화순군 능주면 조광조 유배지 일대 관광 사업’은 역사문화콘텐츠로 매력적인 광광사업으로 성공하리라 여긴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이름이 거론된 송시열이 800번 이상 이름이 거론된 조광조의 비문을 지었고 조광조가 사약을 받은 지척에 조선성리학의 토대를 만든 주자 주희 묘가 있으며 조광조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한 친구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은 조광조의 죽음을 거둔 뒤에 관직에 나서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면서 그를 그리워했다.
그 외 능주 주변의 고인돌, 운주사, 적벽, 능주 씻김굿, 최경회 장군, 호남의병 쌍산의소, 누정 등 화순군 능주는 조광조를 위시한 또 하나의 거대한 조선과 고대와 중세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 콘텐츠의 보고이자 판도라 상자 같은 지역으로 역사인문 관광 콘텐츠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