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과서와 한자 어휘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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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초등학교 교과서와 한자 어휘 학습

박병진 성덕초 교장·교육학 박사

박병진 성덕초 교장·교육학 박사
[아침세평]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있어 한자 교육은 고민거리 중 하나이다.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자는 의견이 불붙은 적도 있었고, 또 여기저기에서 학생들의 문해력이 지나치게 낮아 큰 문제라고 하며 문해력의 차이는 한자 어휘 익히기에 있다고 하니 당장이라도 한자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러다가도 어려운 한자를 진땀을 빼며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해 온 나는, 특히 초등학교에서 과학 개념을 주로 가르쳐 온 경험에 비춰 교과서 한자 공부를 꼭 하시라고 권한다.

그렇다고 한자 쓰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한자를 써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교과서 한자 어휘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도 거의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현무암에는 ‘검을 현’이 들어 있으니 ‘검은 암석’ 정도로 이해하지, ‘검을 현’과 ‘굳셀 무’를 잘 쓰지 못하니 그렇다는 거다.

교사들은 오랫동안 수업을 하면서, 이렇게 가르치면 학생들이 쉽게 이해한다는 이른바 가르치는 노하우가 생긴다.

필자도 초등학교 과학을 전공한 교사로서, 수십 년 동안 과학 수업을 연구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한자 어휘를 함께 가르치면 과학적 개념을 아주 쉽게 이해하더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과학 단원 평가 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만났다고 하자.

“퇴적암 중에서 표면이 부드럽고 알갱이의 크기가 가장 작은 암석은 무엇일까요?

보통의 학생들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암기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진흙 이’를 아는 학생은, 진흙의 작은 알갱이와 겉이 부드러운 특징을 생각해서 ‘이암‘이라는 정답을 잘 찾아낼 것이다.

학생들이 주어진 문항의 어휘를 보고 그 한자를 유추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힘, 그것이 바로 한자 어휘력이다.

초등학교 과학에서는 매 학년 초 여러 가지 과학적 탐구 방법을 공부하게 된다.

관찰과 측정, 분류, 예상 등 탐구 방법을 이해하는 데도 한자 어휘 익히기는 매우 효과적이다.

관찰은 ‘볼 관’과 ‘살필 찰’로 잘 살펴본다는 뜻이고, 측정은 ‘잴 측’과 ‘정할 정’이니 길이나 크기를 재보고 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한자로 분류는 ‘나눌 분’과 ‘무리 류’가 모여서 만든 어휘이니, ‘무리 지어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예상은 ‘미리 예’와 ‘생각 상’이니, 미리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가르치면 쉽게 이해하게 된다.

달의 여러 가지 모양을 공부할 때, 상현달과 하현달은 늘 헷갈리는 개념이다.

그러나 상현에서 상은 위를 뜻하는 ‘위 상’이고, 현은 ‘활시위 현’임을 알게 하면, 상현달은 화살을 위로 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해 준다. 그리고 하현달이라는 이름에서 아래로 향하는 활시위 모양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또 광합성 작용에서 광은 ‘빛 광’이고, 합은 합한다는 뜻의 ‘합할 합’이며, 성은 만든다는 뜻의 ‘이룰 성’이라는 것을 알면, 광합성이 ‘빛과 여러 가지가 합쳐져 양분을 만드는 것’임을 잘 이해하게 된다.

애써 외우지 않아도 잊지 않게 된다.

좀 장황한 글이 됐지만, 초등학교 학생들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자 어휘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한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현재 다루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위해 평생 초등과학을 가르치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쏙과학‘이라는 책을 집필한 바도 있다. 교과서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이러한 책을 통해서라도 잘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정책이 교육과정에 반영되지 못하더라도, 학생들이 스스로 하는 교과서 한자 어휘 학습을 통해 문해력을 쑥쑥 키워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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