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라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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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내 하루라는 버스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아침세평] 가끔 시내버스를 탄다. 운전할 때는 보이지 않던 곳이 눈에 띈다. 그곳에도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웅성거린다는 걸 느낀다.

내 삶 속에만 파묻혀 살다가 몰랐던 남의 삶이 내게 다가온다. 새롭게 보이지만 이웃이고, 새로움을 느끼지만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승용차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창밖 구경을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코앞만 보던 눈이 눈앞을 보게 되고, 한 발짝 앞까지로 눈초리(시야)가 넓어진다.

시내버스가 건물 사이를 지나고 나면 어쩌다 하늘까지 볼 때도 있다. 눈높이가 달라지면 획일화된 삶에서 다양성을 배운다.

운전사의 취향에 따라 틀어진 라디오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귀를 맡긴다. 그 얼참(잠깐)이 듣기 싫은 사람은 이어폰을 꽂기도 하고, 성깔 있는 사람은 채널을 바꾸라고 외치기도 한다. 맞닥뜨린 현상을 맞이할 때, 사람마다 그 반응은 다르다.

휠체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운전사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친절하게 승차를 돕는다. 갑자기 운전사의 라디오 취향이 듣기 좋고, 운전사의 마땅한 몸짓에 웃음 짓는 낯빛들이 고맙다.

오히려 바빠 보이는 사람의 투덜거리는 눈빛이 눈에 거슬린다. 작은 변화가 마음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제 몫을 하는 운전사 앞에서 제 몫 못하는 부끄러운 나를 본다.

때로 시내버스를 타 볼 일이다. 배내기(학생)들의 재잘거림을 들을 수 있다. 욕으로만 말을 이어가는 녀석들의 말 속에는 걱정과 고됨이 들어있다.

배내기들을 들판에 풀어놓아도 제가끔의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양치기가 된 어른들은 그들을 한 곳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건 아닐까?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타는 사람도 있다. 짐을 들어주고, 앉아 있던 자리를 비켜주는 젊은이가 보인다.

짐에는 엄마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고단함이 버릇이 됐는지 한숨이 자연스럽다. 그 내리사랑을 깊이 깨닫는 자식은 몇이나 될까? 나의 치사랑은 얼마 만큼인가? 짐의 한 자락에서 느닷없이 효심이 치솟아 오른다. 그 효심을 실천하면 좋은데.

시내버스 타는 일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다. 내 갈 길만 가다가 남이 가는 길을 보게 되고, 내 잇속만 ?다가 다 같이 좋을 일을 찾게 된다.

내 것만 챙기다가 남의 것도 살피게 되고, 혼자 잘난 척하다가 남의 잘남도 알게 된다. 큰 시내버스를 타고 작은 내 마음을 본다.

시내버스는 내 처지를 알아채게도 해준다. 새로운 풍경에서 오래된 내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내 몸짓이 어떤지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 속에서 내 혜윰(생각)을 바로 잡기도 한다. 낯익은 사람들만 만나다가 낯선 삶을 만날 때 나를 제대로 보게 되고, 낯선 삶이 내 눈에 들어올 때 비로소 내 몫을 알게 된다.

종점에서 내려 언저리를 걷는다. 오랜만에 흙을 밟고 흙을 만진다. 도시엔 흙이 없어 만질 수가 없다. 어쩌다 흙이 보여도 만지기가 꺼려진다.

도시의 나무와 가람(강)줄기는 가지런하지만 종점의 나무와 가람줄기는 자연의 갈피(이치)대로다. 도시의 바람에선 잇속의 냄새가 나지만 자연 묻힌 바람은 내게 힘을 불어넣는다. 도시의 하늘은 좁지만 들판의 하늘은 넓다.

돌아오는 길, 사람들이 또 시내버스를 타고 내린다. 타고 내리는 일은 자기 맘이다. 가고 오는 곳이 다르고, 목적도 서로 다르니까.

내 삶이란 버스에도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누가 타고 내리고, 어디서 타고 내리는가? 언제 타고 내리는지 모를 때도 있다. 내 삶이라는 버스인데도!

오늘 내가 운전하는 하루라는 버스에도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내 ‘하루버스’를 타면 즐거울까, 어차피 탄 사람은 언제 내리고 싶어질까, 대체 타고 싶은 사람은 있기나 할까, 종점까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있을까, 종점에서 나랑 함께 내려 걷고 싶은 사람은 있을까?

내 ‘하루버스’를 멋지고 보람 있게 만드는 일은 모두 나에게 달렸다. 반갑게 인사하고, 친절 한 숟가락도 얹어 드리고, 머리 숙여 고마워해야겠다. 어서 오세요, 함께 가시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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