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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영화감독 |
영화 기획, 시나리오 작법, 연기, 제작 포지션 이해, 촬영, 상영까지 영화 제작 전 과정을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 미디어 영상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돕고 새로운 장르와 직업 세계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목적이 크다 할 것이다.
화순 청풍초등학교를 찾아가는 필자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화 ‘토이스토리’에 나올법한 앙증맞은 사각형 색연필 블록 같은 건물에서 전교생 15명이 절묘하게도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유쾌하고 즐거운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얼굴과 캐릭터를 지닌 아이들은 그들만의 생각과 세계에서 말을 걸어오고 호기심을 나타낸다. 필자는 처음엔 다소 낯선 세계 이방인이 되었고 본능적으로 아이들 세계와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자의 농담과 친구지고 싶어 취하는 제스처는 연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또르르 흘러내리거나 불완전하기 일쑤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주 얼굴을 보면서 필자는 리트머스처럼 젖어들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 필자는 아이들의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이들과 한 통속이 되면서 재밌고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날에는 감명 깊은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여운처럼 청풍초등학교 아이들의 얼굴과 해맑은 웃음들이 필자 등 뒤에 머물거나 따라오고 있었다.
필자는 문득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필자는 아이들과 더불어 또 하나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광경을 보았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채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마법사 같은 김효관 교장 선생님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학년 선생님들은 아이들보다 일찍 등교해 온갖 해찰을 하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일일이 맞아주었다. 필자의 눈에는 마치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는 의전 담당처럼 아이들을 대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이 학교의 공주님과 왕자님들이었다. 그래, 맞다, 아이들이 이 학교 주인공이고 미래 대한민국 주인인 것이다.
선생님들은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을 일일이 맞이하며 손을 잡아주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땋아주고 지난밤의 자잘한 안부를 묻는다. 아이들은 전날의 좋든 기분 나쁜 나빴던 자신들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쏟아낸다. 학교는 아이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에너지를 담아가는 용광로처럼 보였다.
김효관 교장 선생님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소파가 놓인 공간에서 동화를 읽어준다. 때론 동화 속 인물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기도 하고 성우가 된다. 교장선생님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와 말투는 필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례하고 버릇없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매달리고 무릎에 머리를 대고 칭얼대기도 하고 구연동화에 끼어들며 제멋대로다. 교장실을 쥐구멍 드나들 듯이 하면서 엉뚱 발랄한 고민상담을 하면서 입에 맞는 간식거리를 찾아 냠냠댄다. 교장선생님은 그저 또래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한통속으로 즐겁고 해맑았다. 필자는 교장 선생임과 아이들의 그런 환경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사제관계가 전혀 무례하지 않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는 오랜 시간 동안 신뢰의 교감이 형성된 소통의 다른 방식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굳이 심리학이나 교육학의 논리로 설명될 필요 없다. 가슴으로 와 닿는 것만큼 큰 감동은 없기 때문이다.
청풍초등학교 아이들은 밴드 활동의 경험을 살려 뮤직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로 했다. 15명 아이들 모두가 감독이고 모두가 배우가 되고 모두가 스태프가 되어 뜨거운 7월 여름 아이들은 그들만의 추억과 열정의 기억과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 또한 짧은 여름 한 철 청풍초등학교에서 자연 속에 살아가는 15명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을 대하는 예의와 자세에 대해 깊은 배움을 얻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도 사진도 그림도 아닌 대상과 사물을 대하는 사람의 음성과 몸짓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사람 사는 모습을 픽션의 시나리오와 기술과 장비와 기계의 연출이 아닌, 변방의 아름다운 전원에서 해맑게 웃고 떠드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삶이 필자의 눈에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였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한 여름 화순 청풍초등학교에서 보낸 시간에 감사를 보낸다. 가슴 안에 청풍의 신선하고 푸른 바람이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고 간혹 추억의 사탕처럼 꺼내 달달한 그 해 여름을 함께한 영화학교 아이들과 김효관 교장선생님 그리고 영화 프로듀서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신 박선화 선생님을 추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