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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
이제 독일, 영국 등 유럽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들이 자국을 벗어나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아시아 최대의 클래식 시장이었던 중국진출이 어려워지자 다시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클래식 상품의 구매력이 있는 나라들로 눈길을 돌리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빈 필’, ‘베를린 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는 물론이고 동-서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세계적 불경기에 이들의 자존심과 콧대도 예전에 비해 낮아지고 있으며 까다롭고 부담스럽던 초청 조건도 속절없이 양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더불어 세계적인 음반회사 ‘G’사는 각국(各國)내에서만 유통하는 것을 조건으로 로열티를 챙기며 본사 라벨 사용을 폭넓게 허가하고 있는 덕분에 국내 지방 오케스트라에서도 ‘G’사 라벨의 음반을 낼 수 있었으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이렇다. 필자의 솔직한 판단으로는 일본, 미국,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자면 천국이다. 국공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운영자금의 100%를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공연횟수는 적고 재정 자립도에 대한 압박도 없고 회사는 절대 도산할 위험이 없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예술단체가 잘 운영되고 있느냐의 판단도 관객 수를 나타내는 계량적 평가만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 물론 시민사회로부터 법인화에 대한 압박이 조금씩 나오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 미국, 유럽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너무나 부러워하는 한국 국공립 예술단체의 안정적 운영체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성진을 필두로 최근 임윤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인재들은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끊임없이 낭보를 전해오고 있으며 전 세계를 무대로 한국 솔리스트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젊은이들의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의 활약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다. 예전에 상당 기간 경제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일본은 국가적으로 풍요했고 사회적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때가 있었다. 대략 1970년대부터 수십 년간 전 세계 주요 음악콩쿠르에서 약진했었다. 학부모들은 극성스러웠고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클래식 스타를 꿈꾸며 그렇게도 수많은 학생들이 도전했으니 당연히 입상 확률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수의 아이들이 치열하게 준비하고 경쟁하고 있으니 당연히 입상 가능성은 높아진다. 특히 한국에서 자녀에게 음악을 공부시키는 학부형들의 희망이 유독 솔리스트 쪽에 치우치는 현상은 상당히 비정상적이고 무모하다. 소위 잘나가는 솔리스트가 된다는 것이 사실은 천재적인 소질 외에도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엄청난 고통과 인내, 그리고 가족의 희생을 수반하는 지난(至難)한 길이다. 적당히 뛰어난 애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일류 솔리스트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냥 잘해서는 안 되고 아주 썩 잘해야 한다. 프로 음악가가 많은 사회보다 음악애호가가 많은 사회가 훨씬 행복하고 바람직하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을 때 고통은 시작된다.
요즘 한국 아이들이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현상과는 상관없이 한국은 실로 클래식 음악교육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쪽은 예술중학교나 예술고의 신입생 미달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게 이미 오래전이다.
실기 지도 선생들은 넘쳐나고 과잉 공급되고 있는데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지방대학 음악학과의 경우 자체적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것 마저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 졸업 후 개인레슨을 잡기조차 어려운 소위 인기 없는 악기의 전공자들의 수가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의 취업은 정말로 쉽지가 않다. 예술가들이라고 물만 먹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음악대학에서는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의 실질적인 취업과 진로 선택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 예술 산업 관련 분야의 수업들이 더 심도 있게 체계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음대를 나왔다고 해서 모두 연주자로 살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기획자나 프로듀서, 무대 스태프, 음악교사, 전문기자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도 있으며 관련 문화기관에 취업하거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에 취업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회 진출을 앞둔 음대 학생들의 시야는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하며 그러한 성장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대학교육이 져야 할 당연한 책무다. 음대가 예비 실업자들을 대량 양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음악대학이라는 곳에서는 클래식 음악에의 현실적인 지향가치와 비전과 희망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모든 인생사가 그러하겠지만 돈 없는 예술은 더욱 고단하고 힘들다. 인생은 짧으나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은 공허하다.
필자의 사견(私見)이지만 클래식 관련 업계 모두가 살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로서 현재 문화선진국들의 예처럼 ‘엘리트 음악가’의 양산보다는 시민들 개인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취미의 다양성과 접근성에 시선을 돌리고 방향이 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일본에는 작은 동네에도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 많다. 이런 아마추어 단체들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프로 음악가들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기획자도 필요하고 관련 스탭들도 필요하니 해당 전공자들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물론 아마추어 단체의 연주가 프로보다 나을 리가 없겠지만 본인들이 스스로 참여해서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는데 ‘클래식 음악 활동과 시장 확대’에서 이보다 나은 목표가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김다경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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